아동학대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지난해 여덟 살 난 아이 둘이 계모ㆍ친부의 폭력 및 방조로 숨진 ‘칠곡ㆍ울산 사건’은 우리사회가 이 당연한 사실에 얼마나 무감했는지를 일깨웠다. 갈비뼈 16대가 부러지는 등 끔찍한 범행의 죗값으로는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에 온 국민이 경악했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학대아동 보호시스템을 질타했다. 뒤늦은 공분과 자성을 담아 제정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29일부터 시행된다.
두 사건의 파장 탓에 학대사망 사건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등 처벌 강화가 부각됐지만, 이 법의 핵심은 국가기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더 큰 피해를 막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현장에 출동해 피해아동과 가해자를 분리하는 등 즉각적인 보호조치를 취해야 하며, 학대행위가 상습적이거나 중상해를 입힌 경우 친권을 박탈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특례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신속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담당하는 지역아동보호기관의 증설과 상담원 확충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관련 예산은 169억원으로, 당초 보건복지부가 요구한 572억원에서 403억원이 삭감됐다. 재원도 600억원 규모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떠넘겼다. 게다가 복지부가 지난 7월에 입법예고한 아동복지법 시행령에는 아동보호기관 상담원 기준을 중앙 15명, 지역 10명으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26일 공포된 개정령에는 이마저 빠졌다. 정부가 아동학대를 근절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복지법은 아동보호기관을 전국 244개 시ㆍ군ㆍ구마다 한 곳씩 두도록 하고 있고, 전문가들은 당장 최소한 100곳은 있어야 대응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재 개설된 보호기관은 중앙 1곳을 포함해 51곳뿐이며, 지역당 상담원 수도 6.8명에 불과하다. 반면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올들어 8월까지 접수된 의심 신고는 1만240건으로 전년 동기대비 36% 증가했다. 신고의무를 강화한 특례법이 시행되면 더 늘 것이 뻔한데, 문제가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는커녕 새로 접수된 사건의 초기조사에도 허덕일 수밖에 없다.
법무부는 어제 서울역광장에 아동인권 상징 조형물을 설치했다. 캠페인도 좋지만 어린이상(像)에 비춰진 정부의 일그러진 모습부터 되돌아 보기 바란다. 예산과 인력 증원 없이 말만 요란한 정부 정책을 국회가 예산심의 과정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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