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박영선 오전 두 차례 회동, 거침없는 설전 벌이며 분위기 험악
與 "국민과 약속… 예정대로 해야" 野 "합의 없이 일정… 유신 때도 안 해"
정의화 국회의장이 26일 친정인 새누리당의 단독 국회 강행 움직임에 제동을 걸자 여당이 국회의장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강력 반발해 정국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정 의장의 본회의 연기 결정에 새누리당은 “30일까지 모든 협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는 등 예상 밖의 후폭풍으로 정국 대치가 더욱 격해지는 형국이다.
與 단독 국회 강행 움직임에 野 “유신시대냐” 반발
새누리당이 이날 오전부터 단독 본회의 강행 움직임을 보이자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온종일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두 차례 회동에서 거침 없는 설전을 벌였다.
오전 10시 50분 박 원내대표가 이 원내대표의 집무실을 예고 없이 찾아갔으나 여당의 냉랭한 반응에 회동은 9분 만에 끝났다. 이 원내대표가 “내가 (만남을 피하려) 도망 다닌다고 하는데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피하냐”고 언성을 높이자, 박 원내대표는 “야단 맞으러 온 거 아니다. 그만큼 한가하지 않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사람은 헤어진 지 40분 만에 다시 운영위원장실에서 도시락 회동을 이어갔지만 소득 없이 끝났다.
원내대표 간 협상과 별개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본회의 강행의 ‘키’를 쥔 정 의장을 동시다발적으로 찾아가 각각 “예정대로 열어달라”거나 “열어선 안 된다”며 설득하는 등 여야 지도부 모두 분주한 모습이었다.
특히 새누리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들어 본회의 단독 개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야당의 반발에도 아랑곳 없이 이 원내대표는 오후 1시 20분 여당 단독으로 국회 운영위를 개최했고 이후 의원총회를 열고 본회의 개최에 필요한 의결정족수(150명)를 채우기 위해 출석을 독려했다. 이에 새정치연합 문 비대위원장은 “여야 합의 없이 일정을 잡아 놓고선 우르르 쫓아 가는 것은 유신시대에도 없던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장, 고뇌 끝 30일 본회의 재소집 결단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오후 3시에 정 의장이 국회에 들어섰을 때 새누리당 의원들(154명)만 자리를 지켰고, 야당 의원석은 텅 비어 있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정의장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했지만, 예상을 깨고 법안 처리를 유보하면서 30일 본회의 재소집 일정을 통보한 뒤 9분 만에 산회를 선포했다. 정 의장은 “국회의원이 돼서 18년 동안 여당만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될 줄은 과거에도 본 기억이 별로 없고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며 “며칠만 연기해 달라는 야당 요청의 진정성을 믿고 의사 일정을 변경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 30일 본회의에선 여야 의사일정 합의와 상관 없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정 의장의 결정은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상의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경우 4개월 넘게 ‘입법 제로’인 국회 상황이 극한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적을 떠나 상호 신뢰가 깊은 새정치연합 문 위원장이 전날부터 “곧 국회에 들어올 테니 의안 단독처리는 말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정 의장 측은 “고뇌 끝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며 “야당을 믿고 기다려 준 것이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고 했다.
정 의장 결단에 與 당혹ㆍ野 안도
정 의장의 결단에 발끈한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산회 선포 직후 퇴장하는 정 의장을 향해 “약속을 지키세요”“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라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본회의 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선 “날치기 산회”“의장의 폭거” 라며 원색적 비판이 쏟아졌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정 의장에게) 간청하고 하소연하고 눈물로 호소했는데도 손바닥 뒤집듯 한마디 통지도 없이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간 것은 곤란하다”고 정 의장을 비판한 뒤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에 김무성 대표가 사퇴를 반려했고, 의원들도 박수로 호응했다.
이장우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겠다”며 “의장이 약속한 30일 본회의 법안처리 전까지 어떠한 협상도 없다”고 못박았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영근 대변인은 “국회의장이 중심을 잡고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초강경 태세로 전환함에 따라 30일 본회의 전까지 국회 정상화와 관련한 여야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법안 처리가 무산된 것이 여당으로선 30일 단독 본회의를 강행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새정치연합 문 비대위원장은 “여당이 협상을 거부하고 단독국회를 강행하면 이판사판 되는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강윤주기자kkang@hk.co.kr 임준섭기자 ljscogg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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