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서 가까운 극장을 찾았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보았다. 영화 ‘명량’이 여전히 상영되고 있었고 그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다. 7월 30일 개봉한 ‘명량’이,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가 쉬지 않고 공급되는 와중에 아직도 극장에 오르는 것은 의외였다. 개봉 직후부터 관객 기록을 갈아치우던 ‘명량’은 종전 기록(‘아바타’의 1,362만명)을 추월해 지금은 1,758만명에 이른다. ‘명량’에 몰리는 인파를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열망으로 파악하는 분석작업도 이어졌으니 이 영화의 영향이 적지 않다.
‘명량’을 보았다는 사람이 주위에 꽤 많다. 나이ㆍ세대ㆍ직업의 차이를 넘어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이 영화가 매우 훌륭하다거나 아주 재미있다거나 완성도가 높다는 소리는 많이 듣지 못했다. 1,758만명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압도적인 관객 수에 비하면 평가가 박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진중권이 이 영화를 “졸작”이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른 것을 생각하면 다수의 취향을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명량’에 가려서 그렇지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 이룬 853만명 기록도 놀랍다. ‘해적’ 역시 계속 상영될 것이기 때문에 관객이 더 늘어날 게 틀림없다. 이 영화를 본 지인 또한 적지 않은데 그들도 대체로 ‘해적’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관객 수가 영화에 대한 평가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 지인의 영화 관람 방식을 들으면 그들이 ‘명량’과 ‘해적’을 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중순 모처럼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마침 방학이라 초등학교 6학년 딸도 집에 있었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볼 영화를 골랐다. 영화 목록을 살피다가 폭력 장면이 많은 것을 먼저 지웠다. 그 다음에는 노출이 많은 영화를 뺐다. 아이와, 부모와 함께 보는 영화에 폭력적이거나 벗는 장면이 많으면 서로 민망할 게 뻔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명량’을 선택했고 한 편 더 추가해 ‘해적’을 보았다. 물론 부모가 ‘명량’을 좋아했고 아이가 ‘해적’을 재미있어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평가는 두 영화가 무난하다는 정도였다.
‘명량’과 ‘해적’에서 알 수 있듯 지금 한국 영화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두 영화뿐 아니라 ‘변호인’ ‘수상한 그녀’ 등 1,000만 명 안팎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그들 영화가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겠지만 한국인의 유난한 영화 사랑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다. 한국인은 지난해 평균 영화관람 횟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들에게서 영화를 만들어만 주면 언제든 보겠다는 태도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영화계가 자본이 몰리고 인재가 몰리는 부흥기에 다시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관객 동원 능력이 뛰어난 영화뿐 아니라 관객 수에 상관없이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나왔으니 부흥기 진입이 틀린 분석은 아니다.
그러나 이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영화도 적지 않다.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을 마구잡이로 흉내 내고, 줄거리에서 인과관계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두르고, 시도 때도 없이 노출을 일삼는 장면이 그들 영화에 등장한다. 올해 들어 본 한국 영화 몇 편에 하필이면 그런 영화들이 포함돼 있어서인지 지금의 환호도 매우 의아하다. 물론 한국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외국 영화도, 책도, 소설도, 미술도 작품의 편차가 엄청나게 크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에 달한 것을 보면서 한국 영화계가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과분한 사랑에 취할게 아니라 더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박광희 부국장 겸 문화부장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