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나와 닮았다고 하는 배우가 출연한 영화였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대부분 본 데다 몇 차례 만난 적도 있어 ‘닮았다’는 게 그다지 새로울 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던 중 스쳐 지나가는 0.1초의 장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나 아닌 생소한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잠시 빠져나갔던 영혼이 돌아오자 한 모금의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때의 느낌을 이 영화와 비교하니 오래 전 작고한 감독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한숨을 쉴 것 같아 죄스럽다. 1996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폴란드의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1991년 완성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주인공 베로니카와 베로니크는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르지만 둘 다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비루한 에로 영화 같은 제목은 폴란드어 원제 ‘Podwojne zycie Weroniki’, 불어론 ‘La double vie de Veronique’를 부도덕하게 직역한 것으로 원래 뜻은 ‘베로니카의 두 인생’ 정도다.
폴란드의 베로니카와 프랑스의 베로니크. 프랑스 여배우 이렌 자코브가 연기하는 두 여인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베로니카는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현장에서 우연히 자신과 똑같이 생긴 베로니크를 바라보며 얼어 붙는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순간이다. “멀쩡히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것이 집안 내력”이라는 이모의 말처럼 베로니카는 합창단에 발탁된 뒤 첫 공연 도중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모른다. 폴란드 여행 때 베로니카가 자신을 봤다는 사실도, 베로니카가 죽었다는 것도. 폴란드에서 찍은 사진에 있는 베로니카를 뒤늦게 발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만 쏟아낼 뿐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한 편의 수수께끼 같은 영상 시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이중자아의 불가해한 감정을 시적인 영상 언어로 풀어낸다. 베로니카와 베로니크를 정서적으로 이어주며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음악이다. 영화에선 200년 전 네덜란드 작곡가라는 가상의 인물 반 덴 부덴마이어가 1898년 작곡한 협주곡 E단조로 나오는데 키에슬로프스키의 오랜 동지 즈비그뉴 프라이스너가 쓴 곡이다. 합창단에 발탁된 베로니카가 첫 공연에서 노래하는 이 곡은 영화 전체를 압도할 만큼 아름답다. 두 인물의 평행 인생을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가 미스터리하고 때론 불길하지만 장엄하고 매혹적인 연주로 그려낸다.
자코브 대신 폴란드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 엘즈비에타 토바르니카가 부르는 가사는 단테의 ‘신곡’ 중 천국편 두 번째 곡의 도입부에서 가져온 것이다. ‘십계’를 10편의 영화로 만들었던 키에슬로프스키는 죽기 전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세 편의 시나리오 ‘천국’ ‘지옥’ ‘연옥’을 쓰기도 했다.
프라이스너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유작 ‘삼색’ 시리즈 ‘블루’ ‘화이트’ ‘레드’의 음악도 작곡했다. 최근까지 영화음악 작곡가로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지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만 한 걸작을 다시 만들어내진 못했다. 키에슬로프스키를 잃은 프라이스너는 베로니카를 잃은 베로니크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프라이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영상과 음악은 저와 키에슬로프스키의 만남처럼 형이상학적인 수준에 이를 정도로 잘 어울렸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기회들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과 완벽하게 호흡이 맞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 말이죠.”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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