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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과 비판은 같이 가는 것

입력
2014.09.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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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19일 오전 9시 청와대 춘추관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19일 오전 9시 청와대 춘추관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즘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모독’이다. 새누리당은 툭하면 “감히 대통령을 모독하느냐”고 분기탱천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은 “국민을 모독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독 앞에 붙는 단어는, 그러니까, 모독 당해선 안되다고 생각하는 주체인 셈이다.

소란의 출발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면서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가장 힘 있고 단호한 모습이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의 발언을 염두에 뒀을 것이란 추측이 많다. 설 의원은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선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박 대통령의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을 명백히 밝히는 게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게다.

정치이력이 상당한 야당 중진의원이 굳이 그 얘길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설 의원의 발언을 ‘패륜행위’로 비난하며 정치쟁점화하고 나선 것은 실소를 자아낸다. 관련 기사에다 한 네티즌은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기 싫던 차에 건수 잡았군”이라고 댓글을 달았고, 다른 네티즌은 “대통령을 향해 한마디 했더니 발칵 뒤집힌 게지요”라고 촌평했다.

그런데 정말 박 대통령도, 설 의원의 발언을,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자 국민 모독이고 국격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외교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여긴 걸까. 설령 그런 생각이 조금은 들었더라도, 설 의원의 발언 하나만 놓고 그런 건 아닐 것으로 믿는다.

설령 그렇더라도 박 대통령의 ‘대통령 모독’ 발언은 부적절했다. 특히 그 발언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오랜 침묵 끝에 수사권ㆍ기소권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단호함과 맞물려 나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과적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자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끌어안아야 할 대통령이 첨예한 논란의 한 축을 자임한 셈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전해진 뒤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예상대로’ 2004년 8월 한나라당 의원 24명이 모여 만든 극단 ‘여의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을 담은 영상이 다시 올라왔다. 박장대소하던 박 대통령의 사진도 함께. 시종일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욕설과 비하로 논란이 됐던 ‘환생경제’였다. 당시 핵심배역을 맡았던 한 새누리당 인사조차 “내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오점이었다”고 했던 문제작이다.

박 대통령의 ‘대통령 모독’ 발언에 대해 한 야권 인사는 “이 정도는 돼야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랄 수 있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보여준 인터넷 게시물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노 대통령과 개구리의 닮은 점 다섯 가지’, ‘노무현 뇌에 문제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외교는 등신외교’…. 여기까지는 한나라당 전직 의원들의 발언 제목들이다. ‘그 놈의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참 쪽 팔리다’, ‘노 대통령의 정신상태가 올바른지 의문”…. 이들 발언의 주체는 새누리당 현직 의원들이다.

사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넘치고 넘쳤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는 돼야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픈 건 아니다. 국가 원수에 대한 존경과 비판은 함께 가는 거라는 지극히 평범한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제대로 일하더라도 절반은 욕먹는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소모적인 모독 논란의 진원지를 없앨 수 있는 당사자는 박 대통령 뿐이다. 7시간의 행적을 공개하면 불필요한 논란은 끝난다.

검찰이 대통령 한마디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을 만들고, 누리꾼들은 외국 메신저로 ‘사이버 망명’을 감행하는 일은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26년 전에 폐지된 ‘국가(원수)모독죄’의 부활을 걱정하는 얘기가 술자리 안주 삼아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황은 그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이다.

양정대 정치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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