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3주간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다. 그 후유증이 좀체 가라앉지 않아 고생을 하고 있다. 매일 아이슬란드 음악을 듣고, 그곳에서 사온 이끼 차를 마시며, 2차 여행 계획을 세우는 처지가 되었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 모두 비슷한 증세를 겪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은 압도적인 자연환경일 것이다. ‘여기 지구 맞아?’ ‘외계에 온 것 같아.’ 아이슬란드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나눈 대화였다. 얼음과 불의 땅 아이슬란드는 글이나 사진으로 전해질 수 없는 대자연을 품고 있다. 연기를 내뿜는 활화산, 펄펄 끓어오르는 검은 땅,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오묘한 색깔의 산들. 부글부글 끓다가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과 옥색 물빛의 온천, 거대한 폭포와 투명한 호수. 어디를 가나 낯설고 원초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아마도 태초의 지구가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기 전, 오랫동안 인류는 그런 자연에 기대어 살아왔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대상으로서의 거칠고 막막한 자연이다. 아이슬란드에 긴 겨울이 시작되면 태양은 하루에 다섯 시간 남짓 떠오른다. 백야가 이어지는 짧은 여름에도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거센 바람과 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32만 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 인구 중 20만 명이 수도 레이캬비크 부근에 모여 살았고, 나머지 10만 명의 사람들은 점처럼 흩어져 살고 있다. 허허벌판 한 가운데 서 있는 외딴 집을 지나칠 때마다 먹먹해졌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체념이 어려 있었다. 그 체념은 절망이 아닌 순응과 기다릴 줄 아는 여유 같았다. 과묵한 데다 무표정해서 차가운 인상을 지닌 이들이 이야기를 나눠 보면 놀랄 만큼 다정했다. 융통성이 넘치고, 속정이 깊었다. 여행을 시작한지 나흘 만에 교통사고를 겪은 덕분에 그런 체험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으로 가던 해안절벽 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며 굴렀다. 캠퍼밴인 차가 완파될 정도의 충격이었는데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우리 다섯 명은 모두 멀쩡했다. 다행히도 휴대전화가 터져 112에 구조를 요청했다. 한 시간 반이 걸릴 거라고 하더니 10분 후 차 한 대가 왔다. 경찰의 전화를 받고 온 근처 호텔의 매니저 부부였다. 부인이 우리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남편은 부서진 차 안에 있던 조리용 가스 두 통을 바깥으로 옮겼다. 부부는 경찰차가 올 때까지 우리와 함께 머물렀다. 이후 경찰차와 구급차에 나눠 탄 우리는 홀마빅 마을의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았다. 그 사이 경찰은 우리가 머물 숙소를 구해놓았다. 그 모든 일이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이뤄졌다. 마을 사람들의 작은 배려도 계속 이어졌다. 마을 수영장에서는 1회 사용료가 5,000원인 세탁기를 마음껏 쓰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침수로 젖은 모든 옷을 밤새 빨고 말릴 수 있었다. 호텔에서도 체크아웃 시간을 무시하고 저녁 버스를 타기 전까지 자유롭게 머물라고 했다. 관광안내소를 겸하는 카페에서는 우리가 음식을 주문하면 디저트를 덤으로 내놓았다. 심지어 우리의 차량 계약 서류를 읽고, 렌터카 회사와의 미팅에 대비한 구체적인 지침을 건네주기도 했다. 이들의 배려는 요란하지도,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마음이 담겨있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이어진 렌터카 회사와의 미팅도 그런 분위기였다. 모든 비용이 보험 처리 되는 걸로 쉽게 마무리 돼 우리는 남은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외국인 여행자가 내가 사는 나라에서 같은 사고를 겪었다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최근 수학에 빠진,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아이슬란드의 사진을 보더니 소수 같다고 했다. 1과 그 자신으로 밖에 나눠지지 않는 소수처럼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지만 단단한 풍경이라고 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 땅의 풍경과 사람들이 좋아졌다. 아름답지만 거친 자연 속에서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강인한 이들이었다. 그 말없는 소수의 풍경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기를…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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