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캐나다 방문에 이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69차 유엔총회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늘 새벽 귀국했다. 박 대통령의 뉴욕 방문은 유엔총회 연설을 비롯해 유엔안보리 정상급회의와 유엔기후정상회의, 유엔글로벌교육우선구상(GEFI)고위급회의 참석 등으로 다자외교의 꽃인 유엔 무대에 공식 데뷔했다는 점에서 자못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번 유엔 무대 활동에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당초 박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에 획기적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꽉 막혀 있는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상당했다. 특히 북한의 외교수장으로서는 15년 만에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 나들이를 한 것도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핵 개발과 인권 문제를 앞세워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으로 일관함으로써 그런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북한에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라든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권고사항을 거론하며 주민 인권개선을 촉구한 것 등이 잘못이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은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다. 다만 북한이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외활동을 확대하고 있고, 남북관계 경색을 풀기 위한 대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강한 압박으로 출구를 막아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유엔총회 기간 한ㆍ미ㆍ일 외교장관이 주도한 북한인권고위급회의도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북한은 이 회의를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벌여놓은 반공화국 인권 소동의 일환이며 반공화국 모략광대극의 공연 장소”라고 맹비난했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제의한 남북간 인권대화에 대해서도 “철면피하고 가소로운 추태”라고 일축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국내 반북단체들의 대북 삐라 살포 등을 트집잡아 우리 정부의 남북고위급회담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 참가 등 국면 전환에 도움이 될 만한 호재들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북중 간의 이상기류와 북일, 북러 접근 등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심상치 않은 흐름 속에서 우리는 아까운 시간과 기회를 흘려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구상,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등을 통해 여러 가지 당근을 제시하며 북한에 핵 포기를 촉구했다. 한미ㆍ한중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북한에 강한 압박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달라진 게 없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똑 같은 대북 촉구를 되풀이 한 셈이다. 아무리 통일대박론을 강조하고 통일준비위를 가동하는 등 온갖 노력을 해봐야 북측이 호응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정말로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낼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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