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규모 매년 급증… 네이버 10년 누적 조회 292억건 아마추어 작가도 14만명 달해
문화계의 새 주류로… 적은 데이터 사용량에 부담 적고 IT 활용 극적인 연출 가능해져
풋풋한 여고생 수영(18)은 평일 아침 눈을 뜨면 마음이 설렌다. 아파트 같은 동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하는 샐러리맨 김연우(30)와 엘리베이터에서의 만남 때문이다. 짧은 순간의 계속된 반복이었지만, 내성적이었던 둘에게 좁은 엘리베터이터 내에서의 침묵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런 사고로 엘리베터가 멈춰서면서 둘만의 시간은 길어지고, 연우의 마음도 혼란스러워 지는데….
2013년 국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웹툰(인터넷 만화) 1세대 작가인 강풀(본명 강도영)의 ‘순정만화’ 초반 줄거리다. 고교 시절 부모를 떠나 보내고 외롭게 자랐지만 성실한 연우와 순수한 수영 사이에서 벌어진 이 러브스토리에 당시 누리꾼들은 열광했다. 2003년 10월 다음 포털사이트에 연재된 ‘순정만화’의 일일 최고 조회수는 무려 200만건에 달했고, 평균 댓글 수도 25만건을 넘었다. 신변잡기 위주의 단순한 내용으로 흘렀던 기존 작품과 달리 호기심이 가미된 스토리텔링 방식의 포털 사이트 정기 연재가 누리꾼들의 마음을 훔쳤다. 앞서 나왔던 작품이 있지만 ‘순정만화’를 우리나라 웹툰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다.
이렇게 불어 닥친 웹툰 대중화 바람은 10년이 흐른, 지금 수출까지 되면서 당당히 한류 문화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누리꾼들의 ‘사랑방’으로 시작
웹툰이 본격적으로 대중 속에 각인된 건, ‘순정만화’가 나온 2003년이지만 불씨는 3년 전 지펴졌다. 2000년 라이코스 포털 사이트에 ‘만화방’이란 코너가 개설되면서다. ‘즐겁지 않으면 인터넷이 아니다’란 슬로건과 함께 오락 부문 강화에 나섰던 라이코스 만화방은 많은 네티즌들의 ‘사랑방’이 됐다.
이에 가능성을 확인한 대형 포털 업체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웹툰이 개화기를 맞게 된다. 2011년3월 야후코리아가 ‘카툰세상’이란 코너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웹툰 알리기에 나서자, 2003년엔 다음이 ‘만화 속 세상’ 섹션을 오픈한 데 이어 2005년엔 네이버가 ‘네이버웹툰’으로 합류했다. 웹툰 관계자는 “2000년 이전까지 주로 작가들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산발적으로 게재됐던 웹툰은 포털이 전용 플랫폼을 개설하고 지원 사격에 나서면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0년 529억원에 머물렀던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2015년 2,950억원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웹툰의 파급력은 이미 당당히 문화계 주류에 설만한 수준이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 10년간 웹툰을 방문한 일일 평균 이용자수가 620만명에, 누적 조회건수는 292억건, 아마추어 작가 14만명(2014년6월말 기준)에 달할 만큼 웹툰 작가와 독자층은 두텁고 광범위하다.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다음은 올 5월부터 미국 웹툰 포털사이트인 ‘타파스틱’에 웹툰 콘텐츠를 내보내고 있으며 네이버 역시 7월부터 라인웹툰(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글로벌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웹툰 독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작가들의 처우 역시 개선시키고 있다. 현재 분량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포털사이트에 게재되는 웹툰의 회당 원고료는 신인의 경우엔 약 30만~40만원부터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분량 등에 따라 상향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인기도와 성과에 따라서 3~6개월 마다 원고료가 상향 조정된다. 네이버의 경우, 정식 연재 작가 전원에게 건강 검진을 제공하는 등의 복리 후생 혜택도 지원하고 있다.
왜 ‘웹툰’인가…
이처럼 치솟고 있는 웹툰의 인기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 인프라에, 한층 더 다양해진 소재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김재필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만화적 요소와 IT를 활용한 연출 기법이 더해져 기존 만화책에선 맛볼 수 없었던 극적인 재미를 선사한 게 통했다”고 전했다. 원래 만화가 지니고 있던 재미에, 역동적인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배경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드라마나 영화에 버금가는 극적 전달 효과가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스마트폰에 특화된 웹툰에서는 줌인이나 줌아웃, 페이드인이나 페이드아웃 등 스크린에서나 감상할 수 있었던 화려한 연출 기법까지 가미되면서 네티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또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웹툰 감상이 가능한 포털 사이트 정기 연재 코너가 마련돼, 안정적이고 충성도 높은 소비자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웹툰의 인기가 단기간의 유행이 아니라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원인이다.
일반 동영상의 절반 이하 수준의 데이터 사용량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데스크톱(PC) 대신 스마트폰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단 얘기다. 시장조사업체인 엠브레인트렌드 모니터(19~44세 성인 1,000명 중복 응답, 2013년5월)에 따르면 네티즌들은 웹툰 이용 매체는 스마트폰(83.4%)과 데스크톱 PC(88.7%)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웹툰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댓글 기능으로 웹툰에 대한 의견이나 해석, 정보 등을 공유하면서 보는 재미를 증대시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댓글은 단순히 웹툰을 평가했던 것에서 벗어나 작가의 숨은 의도나 전문적인 용어 설명 등 혼자만 봐서는 몰랐던 부분들을 보완해 주는 양념 역할까지 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선 놓쳤던 장면이나 작품 속 숨겨진 의미를 분석한 웹툰 댓글을 따로 모은 ‘베플’ 코너까지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웹툰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포털 업계 관계자는 “웹툰의 잠재 성장성을 감안할 때 기존 응용 소프트웨어(앱) 생태계에 버금가는 거대한 생태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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