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중시 정책은 뒷전으로
미국은 이제 막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에 착수했으나 IS는 이미 미국 외교정책을 흔들어 놓는데 성공했다. 2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중동과 우크라이나에 발목 잡혀 실종된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아시아 중시’정책이란 유럽ㆍ중동 중시에서 벗어나, 일본을 지렛대로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외교전략이다. 그런데 이날 연설에서는 그의 핵심 외교 대상이라는 ‘아시아’는 없었다.
이날 연설은 대부분 IS 격퇴, 러시아 견제, 이란 핵 협상문제에 할애됐다. 아시아는 단 한 차례만 거론됐는데, 그마저도 남중국해 경계선 분쟁이었다. 한반도와 북핵 문제는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동유럽과 중동에서 잇따라 망신을 당하고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외교 정책 우선 순위를 뒤바꿨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더 많은 국제사회가 IS 격퇴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며 ‘IS와의 전쟁’에 큰 방점을 찍었다. IS를 비롯한 과격 무장테러조직에 대한 대처가 시급한데다, 그를 위한 시리아 공습이 국제사회 일부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까지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또 다른 현안은 우크라이나 사태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야기한)러시아가 전후 질서를 흔들고 있다”며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크림반도 강제합병을 계기로 거침없이 패권을 확장하려 드는 러시아를 확실히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아시아 관련해서는 역내 분쟁 방지라는 맥락에서 한 차례 언급했다. 해상충돌 예방법규를 준수하고 국제법에 따라 영유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남중국해에서 주변국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지만 큰 힘이 실리지는 않았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이번 연설의 기조 대로 미국 외교정책의 무게 추가 유럽ㆍ중동에 쏠릴 경우 한반도 주변의 역학관계도 상당부분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대중국 견제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IS와 러시아 등의 이슈를 다루는 과정에서 중국의 협력이 절실한 만큼 일본이나 인도, 호주 등과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기존 정책을 재평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과거사 문제 정도를 제외하고는 ▦집단적 자위권 환영 ▦엔저 용인 등으로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현 아베 일본 정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 결과가 이 같은 변화를 가늠할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핵 무시전략의 강도가 높아지는 대신 이란과 핵 협상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적극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란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세계에 확인시키고, 미국은 이란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 해법에 도달할 수 있다”며 유화적 태도를 보였다. IS 대응을 위해 이란의 군사협력이 절실한 미국이 양국 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핵 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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