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막 때만 해도 우슈를 주목하는 이는 드물었다.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단 한 차례의 금메달도 없었던 데다, 올림픽에서는 정식 종목조차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공수도와 함께 '이색 종목' 정도로 소개해준 게 전부였다.
‘무림’은 서러웠다. 관심이 부족하니 지원도 부족했다. 이윤재 전 대한우슈쿵푸협회장 부임 이후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듯 했지만, 이 전 회장이 본인과 아들의 비위가 드러나 사임하는 등 모진 풍파를 겪었다. 지난해 말부터 대한우슈쿵푸협회는 대한체육회의 관리단체로 지정된 상태다. 당연히 살림살이는 힘들어졌고, 선수단의 사기도 바닥을 쳤다. 자칫하면 우슈가 퇴출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돌아 분위기는 더 뒤숭숭했다.
이들에게 인천 아시안게임은 단순히 4년마다 한 번 돌아오는 국제대회가 아니었다. 노력의 성과를 보여 반드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무대였다. 그랬기에 금메달이 필요했다. 워낙 메달 획득 소식이 많아 2등도 3등도 기억되기 힘든 무대가 아시안게임이란 걸 잘 알기에 더 절실했다.
그래서 '옛 무림고수'들이 팔을 걷어 붙였다. 한국 우슈의 선구자로 불리는 투로 대표팀의 박찬대(41) 코치와 산타 대표팀의 김귀종(39) 코치는 아끼던 제자들을 채찍질 해가며 이번 대회를 대비했다. 두 코치에게 이번 대회는 현역 시절 못 이룬 금메달의 한을 풀어낼 기회이기도 했다. 박 코치는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김 코치는 2002년 부산 대회에서 모두 은메달을 따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 꿈을 이하성(20·수원시청)과 김명진(26·대전체육회)이 완벽히 이뤄줬다. 한때 '우슈 신동'으로 유명했던 이하성은 투로에서 누구도 예상 못했던 한국 선수단의 대회 첫 금메달을 따냈고, 지난 광저우 대회를 앞두고 선수촌을 떠나 속을 썩였던 김명진은 산타에서 '속죄의 금메달'을 따내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6세의 신동 이하성을 발굴해 약 15년을 가르쳐 온 박 코치는 "이하성이 내 꿈을 이뤄줬다"며 눈물을 글썽였고, 김 코치는 "(김명진이) 원래 꾀를 많이 부리는 친구인데,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운동을 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금메달을 따낸 이하성과 김명진은 물론, 은메달을 딴 유상훈(24·영주시청)과 이용현(21·충남체육회), 동메달을 획득한 강영식(26·충북개발공사) 김혜빈(20·양주시우슈쿵푸협회) 서희주(21·광주우슈쿵푸협회) 모두가 20대 초중반의 젊은 피. 경험과 자신감이 더해지면 2018년 자카르타 대회에서는 우슈 강국으로의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우슈는 '새로운 매달밭'의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황무지를 닦아 놓은 두 코치와, 그 땅 위에서 건강하게 싹을 틔운 기대주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지원이라는 물과 거름, 관심이라는 볕과 바람이 필요한 때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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