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초자연'전
붉은 레이저벽ㆍ일어서는 액체 금속...
개성 강한 설치미술 5개 작품 전시
은은한 연기로 가득찬 방에 붉은 레이저가 뻗어나간다. 레이저와 만난 연기는 반투명한 벽을 만든다. 벽 앞에서 머뭇거리다 손을 뻗어보면 레이저 불빛이 손을 비춘다. 존재하지 않는 벽을 뚫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든다. 연기와 함께 방을 채우는 낮고 무거운 기계음은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게 한다.
2일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초자연’전에 전시된 리경의 ‘더 많은 빛을’이다. 음향과 연기, 레이저를 활용해 만든 두 쌍의 가상의 벽과 그 사이에 놓인 좁은 복도는 이 전시에서 관객들이 첫 번째로 만나는 ‘초자연적’ 경험이다.
초자연전은 첨단기술을 활용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연출한다는 공통의 주제 하에 리경, 조이수, 박재영, 김윤철, 백정기 다섯 명의 개성 강한 설치미술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인 전시다. 작가들은 미술관 지하의 다섯 전시 공간을 하나씩 맡아 장소를 활용한 독특한 작품들을 설치했다.
조이수의 ‘바람의 정령’이 대표적인 예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을 핸드벨 소리를 울리기 위한 공명통으로 활용했다. 핸드벨을 하나씩 물고 있는 16개의 기계사슴 머리는 서로의 움직임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화음을 연주한다.
박재영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세워진 장소가 과거 수도육군병원과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사용됐던 점에 착안했다. 어둡고 텅 빈 통로에 서 있는 4기의 바람 발생기가 크레졸과 약 냄새, 그리고 체취가 담긴 공기를 뿜어내게 했다(‘불안한 숨결’). 작가는 “병원 냄새를 연출함으로써 과거 이 곳에서 죽은 청년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의도”라고 소개했다.
김윤철은 창고로 사용됐던 공간을 거대한 연금술 실험실로 변화시켰다. 작가가 직접 발명한 가공된 산화철이 액체 상태로 전자기 장치의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플라스크에 담긴 액체는 금속 조형물이 된 것처럼 일어섰다가 다시 액체로 주저앉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 2’의 액체금속 로봇이 현실화한 듯하다(‘플레어’).
백정기의 ‘웨이브 클라우드’는 기우제를 라디오 방송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기도할 때 피우는 촛불에서 발생한 열 에너지를 전력으로 변환하고 이 전력으로 라디오 송신기를 가동해 전파를 쏘아 보낸다. 철판과 목재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면 가짜 빗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를 방송에 실어 보낼 수 있다. 이 방송은 지상의 전시마당에 설치된 라디오로 수신된다.
전시를 기획한 최흥철 학예연구사는 “설치작품 전시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영상을 배제하고 철저히 공간과 기계장치만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실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고 밝혔다. 이 전시는 내년 1월 18일까지 한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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