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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팀 쿡의 애플, 이재용의 삼성

입력
2014.09.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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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삼성, 변신하는 애플 넘어서야

목전의 진검승부 스마트폰 전쟁 넘어

차분히 ‘소프트파워 비전’ 준비해야

“삼성은 참 럭키(Lucky)한 것 같다.” 2002년 방한한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이건희 회장과 함께 아들 이재용 부회장(당시 상무보)을 만난 뒤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후계자 문제만 놓고 보면 삼성이 럭키한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삼성의 라이벌 애플이 운이 좋은 건 분명한 것 같다.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팀 쿡의 애플로 성공적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쿡은 준비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다. 1998년 애플에 합류해 잡스가 췌장암 수술(2004)과 간 이식수술(2009)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CEO를 맡았고, 2011년 8월 잡스의 자리를 이어 받아 애플의 1인자가 됐다.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고 혁신적인 잡스에 비해 시장의 변화에 민감한 현실주의자로 치부돼 지난 3년간 ‘2인자 증후군’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를 실용주의 리더십으로 극복하고 최근 들어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삼성이 2011년부터 개척해 주도하고 있는, 4인치대 이상의 대화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은 한 손에 쥐고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3.5인치)한다”는 잡스의 철학을 폐기하고, 경쟁사를 따라 잡는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그 결과 지난 19일 출시한 애플의 아이6(4.7인치)와 아이폰6플러스(5.5인치)가 사흘 사이 무려 1,00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이는 역대 아이폰 출시 이후 최대 규모다. 이뿐 아니다. 쿡은 자신을 위협할 만한 2인자를 두지 않았던 잡스와 달리 스타급 2인자들을 키우고,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하는 등 탈권위적 모습으로 기업문화도 바꿔놓고 있다. 애플의 주가는 그가 사령탑을 맡은 지난 3년 사이 2배나 뛰었다.

최근 애플의 상승세는 이재용의 삼성에게는 위기일 수 밖에 없다. 대화면 시장을 놓고 애플과 의 전면전이 시작된 건 물론이거니와, 두 회사 후계자들간 진검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애플을 겨냥해 최근 공개된 갤럭시노트4와 갤럭시노트엣지 역시 이건희 회장이 부재 중인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으로 내놓은 전략 스마트폰이다. 결국 이 싸움에서 지는 쪽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요즘 이 부회장은 삼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이 4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더 이상 부친의 그늘 뒤에서 몸을 낮추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룹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면서 지속성장 전략을 고심해야 하는 이중과제가 그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로서 경험이 부족하고, 부친만큼 카리스마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으로 ‘이건희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니라도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자신의 꿈을 세상에 제시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도 취임 이후 신경영 선언까지 5년 가까이는 존재감이 미미했었다. 산업화시대를 거친 부친과 IT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리더십이 같을 수도 없다.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비전이나 화두를 제시하는 것도 공허한 일이다.

중요한 건 지금 삼성의 복합적 위기가 이 부회장에게는 삼성을 이끌 재목이라는 점을 증명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과 중국 업체들의 협공으로 실적이 나빠지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반전의 모멘텀을 마련, 그 동안 이렇다 할 성공 스토리가 없던 이 부회장이 위기극복 리더십을 지녔음을 보여줄 호기라는 말이다. 팀 쿡이 그랬듯 앞으로 1년, 아니 3년은 이재용의 삼성에게는 골든 타임이다. 애플에 자기 색깔을 입혀 재도약시키고 있는 팀 쿡의 지난 3년을 벤치마킹하고 이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다. 그 첫 단추는 지금 벌어지는 대화면 스마트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삼성의 미래가 창의성과 혁신에 달려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부회장은 3년 정도의 스케줄을 갖고 차분하게 IT시대에 걸맞은 스마트 리더십으로 ‘하드웨어 삼성’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글로벌 소비자와의 소통을 아우르는 ‘소프트파워 삼성’으로 도약하는 미래 비전을 차근차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위기의 삼성에 대한 걱정이 높은 요즘 삼성이 럭키하다는 앨빈 토플러의 말을 믿고 싶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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