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길터주려 세번이나 은퇴 선언, 단식 강화 위해 또다시 불러내
결승 마지막 주자로 노련한 경기, 열살 어린 중국 선수 넋다운 시켜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배드민턴 단체전 결승이 열린 23일 인천 계양체육관. 중국과 게임스코어 2-2로 팽팽히 맞선 한국의 단식 마지막 주자는 베테랑 이현일(34ㆍMG새마을금고)이었다. 그는 안방에서 12년 만의 금메달 도전의 마지막 키를 쥐고 있는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침착한 표정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마치 연습경기를 하듯 노련한 플레이와 여유 있는 제스처에 열 살 어린 상대 가오 후안(24ㆍ중국)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293분의 대접전을 금메달로 마무리한 순간 이현일은 포효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 졸이며 경기를 지켜 보던 후배들은 대기석에서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한 뒤 코트로 뛰어내려가 그를 헹가래쳤다.
전성기를 한참 지나 공백기가 있던 그를 대표팀의 히든카드로 발탁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백전노장 이현일은 마지막 한 수에서 고도의 기 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약관을 갓 넘긴 22세에 대표팀의 막내로 합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인도네시아와의 남자단체전 결승전에 출전해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탠 이현일은 12년 만에 국내에서 열린 대회에서 최고참으로 다시 정상에 섰다. 기량은 전성기보다 떨어졌을지 몰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승부사 기질은 더욱 업그레이드됐다. 이현일은 지난 21일 일본과의 8강전에서도 게임 스코어 2-2로 맞선 마지막 경기에서 우에다 다쿠마에게 2-1(14-21 21-18 21-9)로 역전승해 한국을 탈락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현일은 박주봉(50), 김동문(39)의 계보를 잇는 한국 배드민턴의 간판이었다. 2004년 2월 한국 선수 최초로 단식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번까지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2004년 아테네를 시작으로 올림픽에만도 3차례 출전, 2008년 베이징과 2012년 런던에서 4위까지 올랐다.
지난 2007년 코리아오픈 1회전에서 스스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가 4개월 만에 복귀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고, 이후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겠다며 다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2010년 또 한 번 대표팀의 러브콜을 받아 런던 올림픽까지 치른 그는 이후 실업팀 생활에 전념하려 다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의 단체전 금메달 탈환을 노린 이득춘 감독은 이현일의 이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복식 세계랭킹 1위 이용대(26ㆍ삼성전기)-유연성(28ㆍ국군체육부대) 등 10위 안에 3개 조를 보유한 남자복식에 비해 전력이 처지는 단식을 강화하기 위한 카드로 대표팀은 그를 선택했다. 단체전에서 5단식까지 갈 경우에 대비한 포석이었다.
이현일은 “후배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며 겸손해 하면서 “대표팀에 복귀하기까지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한국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부상을 우려하지만, 실력으로 다시 선택을 받은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인천=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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