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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끌고 떠난 '타요 여행',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입력
2014.09.2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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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내 놀이터에서 가끔 목격되는 아빠와 딸이 있다. 딸이 놀고 있는 건지, 그 아빠가 놀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즐겁게 노는 탓에 주변 아이들은 물론 엄마 아빠들의 부러움을 받는다. 그 아빠가 뛰며 소리치며 어찌나 딸과 잘 노는지 나를 비롯한 주변 아빠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할 정도여서, 또 그들의 놀이를 보는 게 더 재미있어서 나는 벤치에 앉아 넋 놓고 구경하는 때가 많다.

율동 안 되는 몸치에 공 찰 땐 개발(?) 소리를 듣는 이 아빠에게 저처럼 놀아주기는 중노동 중의 중노동. 이상한 오기 하나가 생겼다. ‘남들과 다르게 놀아주자!’ 육아휴직 후 처음 가졌던 ‘엄마가 못해주는 걸로 놀아주자!’에서 약간 진화(?)했다면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이게 안되니, 저걸 해보자’는 거지만!)

카시트를 싫어하지 않는 아들이지만 아들과 함께 앉아 세상 구경 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감행한 시내버스 종점종점 투어.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아들은 아빠가 안아야만 밖을 볼 수 있는 게 단점이다.
카시트를 싫어하지 않는 아들이지만 아들과 함께 앉아 세상 구경 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감행한 시내버스 종점종점 투어.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아들은 아빠가 안아야만 밖을 볼 수 있는 게 단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시내버스로 종점에서 종점 왕복이다. 체력도 되고 일상이 ‘토일토일토토일’이다 보니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고,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면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다. 흔들리는 차에 애를 태워서 어쩌자는 것이냐, 는 우려도 있었지만 평소 처음 보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며 즐거워하는 아들 모습에 ‘필’을 받아 강행했다. 차창 밖으로 쉬지 않고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에 아들은 얼마나 열광할까.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유모차에 속도가 붙었다.

시내버스 여행이 처음인 만큼 정거장 간격이 비교적 먼, 외곽으로 나가는 코스를 택했다. 먼발치서 들어오는 저상버스는 유모차 손님을 알아보고 인도에 바짝 붙여 정차했다. 심지어 유모차 바퀴에 브레이크를 걸고 아빠가 완전히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린다. (어, 이게 ‘타요’?!)

시끄러운 버스 소음 때문인지 종점까지는 절반이나 남았는데 아들은 잠이 들어버렸다.
시끄러운 버스 소음 때문인지 종점까지는 절반이나 남았는데 아들은 잠이 들어버렸다.

여기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날씨도 좋아 잘 선택했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높은 창틀이었다. 안아야만 아들이 바깥을 볼 수 있었다. 뭐 서서 안는 것도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무릎 위로 안아 올렸다. 아들은 아빠한테 안긴 뒤 차내 분위기에 익숙해지자 차창에 손가락을 내다 꽂으며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쉬지 않고 뱉기 시작했다.(역시!)

예상대로 아들은 즐거워했지만 내 어깨와 팔에는 통증이 시작됐다. 그래도 아빠가 아니면 누가 또 이렇게 버스 태워서 바깥 세상 구경 시키랴. 팔을 바꾸고 자세를 바꿔가며 안았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은 아들 유모차까지 버스에 싣고 가는 게 신기했는지 이쪽으론 쏘아보고, 아들에겐 한번씩 웃은 뒤 뒷자리로 갔다.

평소 지나는 버스를 가리키며 ‘뻐~, 뻐~’라고 외치던 아들이 그 버스에 올라 탔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하지만 아들은 출발 30분이 안돼 곯아 떨어졌다. 빠르게 바뀌는 풍경에 피로가 쌓였는지, 버스 소음과 진동이 잠을 불렀는지 어깨 위에서 곤히 잠들었다. (이 잠은 아빠가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이어졌다.)

되돌아 오는 길에서는 육아 아빠를 배려하는 버스도 승객도 없었다. 이 아빠 정도 되니까 50Cm 가량 돼 보이는 데크로 유모차를 올렸지.
되돌아 오는 길에서는 육아 아빠를 배려하는 버스도 승객도 없었다. 이 아빠 정도 되니까 50Cm 가량 돼 보이는 데크로 유모차를 올렸지.

종점 근처서 점심으로 냉면 한 그릇을 비우자 피로가 몰려 왔다. 어깨 허리 통증도 시작돼 버스를 타면 이번엔 내가 잠들거나 토할 지경이었다. 돌아갈 일이 태산 같았다. 집에서 동요 틀어놓고 그림책이나 읽어줄 걸 그랬나, 넒은 세상을 보여 주고픈 아빠 욕심이 과했나 싶다. 택시를 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아직 받아보지도 못했지만 80만원 남짓한(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회사에서는 주는 돈은 없고, 나라에서 주는 육아휴직 수당) 월급쟁이 주제에! 가져온 바나나와 빵, 두유를 근처 공원 벤치에서 먹인 뒤 흔들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가까스로 집에 다시 돌아왔다.

아들이랑 놀아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낮에 있었던 일을 풀어 놓으며 이런 저런 육아휴직 넋두리를 길게 하자 아내는 짧게 붙인다. “여보, 힘들어도 이렇게 아들이랑 놀 수 있는 것도 한때야. 즐거운 마음으로!” 그 뒤로 아들이 씩 웃는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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