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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담뱃값, 뜨거울 때에 두드려라

입력
2014.09.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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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때가 있듯이 담뱃값 인상에도 때가 있다. 담뱃값 인상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해 흡연을 억제하려는 보건정책적 관점이 있는 반면에, 담뱃세를 붙여 재정수입을 확보하려는 재정정책적 관점이 있다. 사실 담뱃값의 대폭 인상은 보건복지부와 금연운동가, 보건학자들이 흡연을 억제하려는 강력한 수단으로 줄곧 주장하여 왔으나, 서민부담과 물가상승을 이유로 번번히 좌절된 지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복지재정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재정당국이 담뱃세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때문에 국민건강 보다는 증세의 수단으로 비쳐지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더구나 현재 2,500원인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면 담뱃세 수익이 극대화된다는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20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소득수준을 감안한 적정 담배가격은 4,500원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따라서 2,000원 인상은 국제기준에 비추어보면 무리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안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복지증세 논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모두 역진적 성격을 지닌 서민과세이기 때문이다. 복지증세가 필요하다면 소득세와 법인세와 같은 직접세를 인상하라는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그런데 때마침 담뱃세의 역진성을 완화하는 수단이 추진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를 소득중심으로 개편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임대소득과 금융소득, 연금소득에 보험료를 매김으로써 고소득층의 부담을 높이고, 지역주민들의 집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부담을 대폭 줄이는 방향이다.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는 실질적으로 소득세 인상과 같다. 다른 한편에서는 건강보험공단이 담배제조사들을 상대로 한 대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법정 공방전이 시작됐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담배규제협약(FCTC)을 비준하고도 지금까지 이행을 미뤄왔던 금연 규제를 시행해야 할 처지에 몰리고 있다.

바야흐로 담배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담뱃값을 어느 정도 올릴 것인지, 담뱃세를 어느 용도에 쓸 것인지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거대한 복지증세 논쟁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KBS 여론조사에 의하면 2,000원 인상폭이 너무 커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51.5%, 인상이 적절하거나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46.8%로 나타났다. 이런 팽팽한 의견은 담뱃세 수입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담뱃세 수입을 흡연관련 질환 치료비와 예방, 서민의 중증질환 보장과 빈곤층의 복지에 좀더 많이 배분한다면 담뱃세의 역진성은 완화될 것이다. 한편 담뱃값 인상만으로는 흡연 억제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흡연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담배 외에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담배를 살 가능성이 있다. 강력한 비가격 규제가 함께 병행되어야 가격규제의 효과가 여실히 나타날 것이다.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고, 담뱃갑에 흡연경고 그림을 의무적으로 넣고, 담배광고와 판촉, 후원을 금지하는 선진국 수준의 비가격 규제를 제도화하면 담뱃값 인상에 동조하는 세력을 넓혀나갈 수 있다. 때마침 10월 13~18일 모스크바에서 담배규제협약(FCTC) 제6차 당사국총회가 개최된다. FCTC는 금연올림픽과 같다. 우리나라는 금연올릭픽에서 늘 바닥권에서 헤맸다. 이번 총회에서는 우리나라가 의장국을 맡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메달권에 진입하기를 기대해본다. 언제까지 서민들이 담배 한대와 소주 한잔으로 애환을 달래도록 해야 하나. 서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서라도 담뱃값을 올리자. 담배규제와 담배소송, 건강보험료 개편,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와 복지 확충 등 주변의 환경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담뱃값 인상의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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