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 19일 법원은 연이어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자동차 생산공정에서 도급은 인정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기존 대법원 판결의 연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늘 궂은 소식만 들으며 풀죽어 가던 노동계에겐 단비같은 판결이었다. 법원이 노동자의 편을 든다는 낯선 느낌에다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조건을 뛰어넘는 판결에 누구는 재판부의 국적마저 의심스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문제는 재판부의 국적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나쁜, 그러면서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현대차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는 일이다. 법원이 지급을 명령한 밀린 임금도 가처분신청을 통해 지급을 피하려 들 것이다.
재판이 재개되면서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의 운행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일부 언론이나 당사자들만 헛물을 켜며 흥분했을 뿐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다시 ‘특별고용’ 절차로 넘어간다.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나.’
과연 그럴까. 비정규직 노사갈등은 재점화되고 특별고용 절차도 자기동력을 잃지 않을까. 현대차에 대해 들끓는 사회적 비판이 과연 ‘냄비현상’으로 그칠까. 불법파견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더 커지지 않을까. 밀린 임금은 물론 근속연수조차 포기하면서 특별고용에 합의한 노조집행부에 대한 조합원의 반발도 예상된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요는 그것을 소모적인 갈등이 아니라 생산적인 에너지로 모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참에 현대차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길게 그리고 크게 보자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싸워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대차의 중요한 관심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현대차 노사관계와 생산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현대차는 간접고용(사내하청)을 둘러싼 노사갈등의 진원지였다. 내부적으로는 과잉인원으로 인해 낮은 생산성에 시달렸다. 그 중심에 사내하청이 있었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비정규직을 우회하여 변화를 시도할 수 없다면 이번 판결은 회사로서 기회일 수도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경우 회사가 당면하는 핵심적인 과제는 노동의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물론 고용안정을 전제로 내부적 유연성(물량이동, 전환배치, 노동시간 계좌제 등)을 높이는 것이 답이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서 고용안정이 가능한가도 물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노사합의 없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고용안정과 경쟁력 제고라는 과제를 노사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이제 비정규직도 협의의 파트너인 정규직 조합원이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현대차가 즐겨 쓰듯 ‘법대로’ 하는 길이기도 하다. 노사관계는 최소한의 정의라 불리는 사법적 정의 위에 노사가 합의를 통해 쌓아가는 건축물이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결은 노사관계의 토대를 이룬다.
그간 현대차는 비정규직에 관한 한 법의 이름으로 법을 무력화함으로써 ‘법 위의 재벌’이라거나 법을 사법(私法)화한다는 비판까지 들어왔다. 노사관계를 법에 의존하는 것은 노사관계를 복원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실종시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게다가 현대차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현대차로선 이제 사법적 정의 위에 사회적 정의를 세울 때다.
현대차는 이번 판결을 변화의 시발로 삼아야 한다. 만일 ‘누가 이기나 보자’며 재심으로 끌고 간다면 변화의 계기는 물 건너가고 만다. 비정규직과 싸워 이긴다 하더라도 회사가 얻는 이익이 그 손실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지는 것이 확실시되는 재판을 이어간다는 것은 더 크게 지는 길이자 시간벌기용을 넘어 폭탄돌리기로 비칠 수 있다.
현대차에서 노사관계의 주된 설계사는 회사다. 노사관계의 변화는 회사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사법부에 이어 이제는 현대차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차례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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