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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사례로 짚어 보는 국제법의 자결권

입력
2014.09.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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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후 자결권 본격 제기… 전후처리 과정서 독립국 이론 제공

국제법상 권리로 인정… 유엔헌장·국제인권 규약에 규정

영토주권 vs 자결권 충돌… 각국 이해관계 따라 해석 제각각

전날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된 영국 스코틀랜드 의 에든버러시 로열 하이런드센터 개표소 테이블에 19일(현지시간) 독립에 '반대' 표시를 한 투표지가 쌓여 있는 모습. 영국 언론들은 32개 개표소 가운데 가장 먼저 개표가 완료된 클라크매넌셔의 개표 결과 '반대'가 54%로 '찬성'(46%)을 8% 포인트 차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온라인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투표 당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와 동일한 것. AP 연합뉴스
전날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된 영국 스코틀랜드 의 에든버러시 로열 하이런드센터 개표소 테이블에 19일(현지시간) 독립에 '반대' 표시를 한 투표지가 쌓여 있는 모습. 영국 언론들은 32개 개표소 가운데 가장 먼저 개표가 완료된 클라크매넌셔의 개표 결과 '반대'가 54%로 '찬성'(46%)을 8% 포인트 차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온라인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투표 당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와 동일한 것. AP 연합뉴스

스코틀랜드는 결국 영국 연방에 남게 됐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발트 3국, 중국 등 세계 도처의 국가들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요구에 직면해있다. 다수민족에 대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요구가 제기될 때마다 국제사회는 영토주권 존중과 소수민족의 자결권 보호 사이에서 거센 논쟁을 겪어왔다.

국제법의 시작을 알리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이래로 국가는 국제사회의 기본단위로 인정되었다. 국가(state) 라는 용어는 ‘민족국가’(nation-state)를 상정하고 있다. 공통의 언어와 종교 및 역사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해온 인종적(ethnic) 집단을 민족이라 칭하고 그 인적 집단이 국가를 구성한다는 의미이지만 이는 사실 픽션에 가깝다. 국가가 하나의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착각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결권의 국제사회 등장은 제1차 대전 후

민족국가라는 용어 속에는 다수민족에 의한 소수민족 지배를 정당화하고 이를 국가의 질서로 합리화하는 강자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국가를 국제사회의 기본단위로 인정하더라도 국가 내부 구성의 측면에서 볼 때 이론과 실제의 간극은 크다. 그 모순 때문에 소수 민족은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열망에 계속 휩싸일 수밖에 없다. 자결권은 이러한 열망에 힘을 보태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회과학 용어가 그렇듯 자결권이란 용어도 역사와 함께 진화와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 왔다. 자결권은 과거에 민족자결주의라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지만 현대적 의미에서는 이미 실정 국제법상 권리이므로 자결권이라는 용어가 더 정확할 것이다.

자결권 개념의 출발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과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이 개념은 국가를 형성하는 기본 원리는 인민(people)의 뜻과 의지의 반영이며 그것이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기본 토대라는 인식 아래에서 생겨난 것이다.

자결권이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토만 제국이 붕괴되었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자결권 주창자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레닌과 미국의 우드로 윌슨이었다. 피압박민족의 해방이라는 국제 사회주의 사상의 기치 하에 레닌은 자결 원칙을 강조하였고 미국 대통령 윌슨은 도덕적 국제정치 사상으로서 자결권을 옹호하였다.

결과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 베르사유 조약 체결을 통해 수많은 동유럽 사람들이 500년이 넘는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국가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자결권 실현은 국제사회 일반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제1차 대전 패전 국가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강행규범이지만 구체적인 적용은 난제

1945년 유엔 창설과 더불어 발전해온 현대국제법 아래서 자결권은 매우 역동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유엔 헌장은 제1조 제2항과 제55조에서 자결 원칙을 바탕으로 국가간 우호관계 확립이 유엔의 목적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국가들이 가입한 1966년 국제인권규약 제1조에서도 모든 인민의 자결권을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자결권은 현대국제법상 ‘강행규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점을 여러 차례 확인하고 있다. 강행규범이란 국제사회 전체를 구속하는 규범으로 규범 준수의 예외가 인정될 수는 없는 강제적 규범이다. 자결권의 행사가 국제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구성원들은 자결권의 정당한 행사에 협조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결권의 실체적 내용과 구체적 적용가능성 여부는 현대국제법의 최대 난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자결권의 주체인 인민의 개념부터가 모호하다. 인종, 언어 등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이해하지만 그 범위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상태이다.

학자들은 자결권을 보통 외적 자결권과 내적 자결권으로 구분한다. 외적 자결권이란 인민이 장래의 국제적 지위를 결정하고 외부(외국)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말한다. 탈식민화가 완성된 현 시점에서는 기존 국가로부터 일부 집단이 분리독립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있다. 내적 자결권은 기존 국가에서 민주적 정부 체계가 확립되고 자결권의 주체인 인민의 정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며 소수민족의 보호가 실현되는가 여부가 자결권 실현의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소수민족에게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이 부여되는 방식이 그 실천적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자결권은 기존 국가 내에서도 계속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권리이며 국내 차원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를 통한 소수민족의 실질적 보호를 그 내용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자결권 하면 보통 식민체제로부터 해방만을 연상하는 사람들에게 현대적 의미의 자결권의 본질이 매우 다르게 전개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식민체제 청산을 국제법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자결권을 강조했다면, 냉전 종식 이후의 자결권은 기존 국가의 영토선을 가능한한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민주적 제도와 절차를 통해 소수민족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적 방식으로 주민의 의지 실현이 중요

물론 예외는 있다. 국제관습법으로 인정되는 유엔 총회 결의 ‘우호관계선언’은 국가의 영토보전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자결권이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가 내에서 인종, 종교 혹은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 없는 정부를 운영해야 하며 그런 정치제도를 갖춘 국가만이 자결권에 부합하는 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한 국가가 극단적인 인종차별적 방식으로 특정 소수민족 집단을 대우한다면 그 집단은 분리독립을 강행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캐나다 대법원은 1998년 퀘벡 분리독립 문제에 대해 인민이 국내적으로 실효적인 정치참여를 거부당하는 경우에 인민은 분리독립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수민족에 의한 소수민족의 극단적 인권탄압이 존재하는 경우 극히 예외적 방식의 분리독립 강행이 자결권 행사로 인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2008년 세르비아에서 코소보가 일방적으로 독립 선언한 것을 정당한 자결권 행사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세르비아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에 대한 잔학한 인권침해를 강조한다. 최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결코 합법적인 자결권 행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극심한 인권 탄압이 존재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결권에 대한 이 같은 국제법적 설명은 현실 국제정치와는 상당한 괴리를 보여준다. 자결권은 다양한 국제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관련 국가들에 의해 편의적으로 해석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을 세르비아의 주권 침해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맹비난하던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 때는 오히려 국제법에 부합하는 자결권 행사라고 태도를 일변했다. 러시아는 또 자국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체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인권문제를 말하면서도 정작 티베트 문제는 자결권 차원에서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결권이란 그 권리의 주체인 인민의 뜻과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있는 것이며 이 과정을 국제법은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그 어떤 구성원도 정당한 인민의 뜻과 의지의 실현 과정인 자결권 행사를 방해할 수 없으며, 자결권 행사는 반드시 민주적인 절차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 연방에서 분리독립하지 않겠다는 이번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의지 표명 역시 정당한 자결권 행사의 모습이다. 다수자와 소수자의 갈등적 상황을 민주적 시스템을 통해 해결했기 때문이다. 자결권의 실현과 심화된 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자결권의 본질을 결국 다문화와 소수민족이 존중되는 민주적 시스템의 운영과 발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가장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 역시 자결권이다. 통일한국이라는 인민의 뜻과 의지의 표명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지양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 왜 중요하며 또 왜 어려운 문제인지 이번 스코틀랜드의 교훈을 통해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다.

박정원 단국대 교수ㆍ법학

전날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한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19일(현지시간) 조지광장에 모여든 독립 찬성자들의 뒷모습이 어두워 보인다. BBC방송은 개표가 70.6% 완료된 가운데 반대 54.7%, 찬성 45.3%로 나타나자 "부결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32개 개표소 중 26곳의 개표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22곳에서 반대가 우세했다. AP 연합뉴스
전날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한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19일(현지시간) 조지광장에 모여든 독립 찬성자들의 뒷모습이 어두워 보인다. BBC방송은 개표가 70.6% 완료된 가운데 반대 54.7%, 찬성 45.3%로 나타나자 "부결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32개 개표소 중 26곳의 개표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22곳에서 반대가 우세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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