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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에곤 실레가 그린 욕망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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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에곤 실레가 그린 욕망의 심리

입력
2014.09.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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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나 성 관련된 사건은 점차로 수위가 높아져 이전에 상상도 못했던 엽기적 수준이다. 지난 9월 경찰청의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3년 한 해 동안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하루에 2.5건 꼴로 발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가출 청소년을 유인해 성매매 영업을 한 성인 2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숙식을 제공한다는 공지를 내 청소년들을 모집하고 30여 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알선했다. 또 30대 남성이 자신의 음란행위가 담긴 영상들을 여고생에게 수십 차례 전송해 검거됐다. 군 성범죄도 심각해지고 있다. 2010~13년 36.1% 증가해 전체 범죄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런 성 범죄에 대해 처벌이 약하다는 논란도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교직원 48명은 여전히 지방공무원 신분으로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나 사회 지도자층에서도 성희롱이나 성 관련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사생활이라고는 하기엔 도를 넘어 가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성 관련 사건은 그만큼 사회가 성에 대해 자유분방해질 뿐 아니라 절제가 아닌 쾌락의 대상으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삶에 ‘성’ 이란 중요하다. 성 관계가 원만치 않은 정상적인 성인의 경우 불만, 우울, 불안,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성적 에너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해소되기도 하지만 때론 승화를 통해 충족되기도 한다. 예술적인 창조성, 남을 도와주는 이타적 행동 혹은 종교적 활동 등이 그런 승화의 일환들이다. 하지만 성적 에너지가 장기적으로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되지 않고, 적절하게 표현되지 않거나 무시되면 성은 사람들의 일상에 침범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정신적 증상까지 보일 수 있다. 이와 같이 성적인 에너지는 자신과 타인의 건강한 삶에 중요하고 발전적인 창의성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또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체를 많이 그린 화가로 에곤 실레(Egon Schiele)가 있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적인 부분과 성적인 부분을 대범하게 표현한 표현주의 화가라 할 수 있다. 화가로서의 실레의 삶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330여 개의 유화와 2,500여 개의 데생을 그렸다고 한다. 이 중 100여 점이 자화상이었고 초상화도 많았는데,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나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대범한 포즈를 취하고 지극히 사적이고 숨기고 싶은 신체적 부위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극적인 나체 그림이 많다. 이렇게 선정적인 그림들은 그 시대 여러 사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며, 어린 소녀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다가 법적 처벌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레가 표현하고자 한 성은 그저 쾌락이 아니라, 끊임없는 욕망에 상실되어가는 인간의 나약하고 고독한 모습의 표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자신을 그린 자화상조차 과감한 나체로 표현했다. 진정한 자기란 일상의 옷을 걸치고 그럴듯하게 타인들과 관계하는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실레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화려한 겉모습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그 욕망에 상실돼 가는 인간의 약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아마도 실레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본 모습은 성적 열망에 사로잡힌 존재일 수 있다. 그저 정신병자들일 수도 있다. 에로틱한 나체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능적인 욕망을 들여다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실레의 나체는 선정적이거나 성적인 느낌보다는 왜소하기 이를 데 없다.

요즘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성 관련 사건과 범죄는 지금까지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있던 우리의 자제력과 절제력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리 근사한 옷을 입어도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몸은 보잘 것 없다. 특히나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은 약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인간은 하염없이 약한 존재임을 실레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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