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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기우는 사법

입력
2014.09.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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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법 해석은 난망한 일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다른 재판부에 의해 자주 뒤집힌다. 대부분 법의 불완전성 탓이다. 법관이 작정하고 판결을 기울이는 경우는 이제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도 갈수록 오른쪽에 치우친 사법 결정 비중이 커지는 건 판사 직군이 부유층에 포섭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사진은 한 서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내 도서관 모습. 김주성기자 poem@hk.co.kr
일관된 법 해석은 난망한 일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다른 재판부에 의해 자주 뒤집힌다. 대부분 법의 불완전성 탓이다. 법관이 작정하고 판결을 기울이는 경우는 이제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도 갈수록 오른쪽에 치우친 사법 결정 비중이 커지는 건 판사 직군이 부유층에 포섭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사진은 한 서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내 도서관 모습. 김주성기자 poem@hk.co.kr

무결한 건 없다. 법도 그렇다. 한계는 판결로 드러난다. 뒤집히기 일쑤다. 외려 맹신이 더 위험하다. 불가침 아성 안에 도사린 권력은 타락한다. 도전과 응전 속에 쌓이는 게 신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합법 노조가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단 9명의 해직교사 때문에 6만명의 조합원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어처구니 없어 보였다.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둔 게 위법이니 전교조가 그 9명을 배제하는 게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었을 텐데 전교조는 험한 길을 택했다. (…) 그런데 따져보면 납득 안 되는 점이 없지 않았다. 우선 세계적으로 해직교사라고 해서 교원노조 자격을 제한하는 나라를 찾아볼 수 없다. (…) 유독 교원에게만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노동권(단결권)을 제한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뒤를 이었고, 실제로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쟁점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위헌법률심판에 올랐다. (…) 위헌심판을 제청한 2심 재판부는 “헌법 해석상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은 국민 기본권 신장을 위해 확대해석할 수는 있지만 제한하거나 부정하기 위해 허용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며 문제의 법규가 헌법상 노동권 침해를 의심할 만하다고 밝혔다. 이렇게 법원의 판단이 뒤집어지면 흔히 판결에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추정이 나오기 십상이다. (…) 판사들로서는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점이기도 하다. 판결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 자체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 하지만 존중해야 할 사법부에 대해서도 비판과 토론을 막을 길은 없다. 우선 법 자체가 불변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은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지만 사회의 변화와 함께 법도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 (…) 우리 역사에서 뒤늦게 재심을 거쳐 판결을 바로잡는 일도 적지 않았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판결을 되짚어 보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또한 법원이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일이 많아 공방과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최근 국가정보원 선거댓글 사건에 대해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했던 판결이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 해석을 100% 믿지 않는 시민들이라 해도 해당 판결이 법의 자구를 기계적으로 적용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고, 자연히 다양한 판례들을 비교해 보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분쟁이 격화하면 흔히 튀어나오는 말은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례들을 보면 법대로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법을 통일되게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사법부가 신뢰를 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소송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비판을 자제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활발한 토론이 중요한 일이다.”

-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김희원 사회부장) ☞ 전문 보기

“법원의 인터넷 내부 통신망을 이용해 현직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 1심 판결의 재판장에 대해 올린 정치적ㆍ인신모욕적 비판의 글은 세월호특별법 문제로 암울한 정치 과잉의 현 시국을 더욱 우려하게 만든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 기관인 판사는 판결로 말하면 됐지 법원에 왜 내부 통신망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 공식적인 소통이라면 사법 행정망이면 충분할 것이고, 그것은 학술적 토론의 장은 더구나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내부 통신망이 실은 세상을 향한 공개의 장(場)이라는 것을 판사도 세상도 다 안다. 그 부장판사는 공론의 장을 이용해 자기 정치적 견해의 동조 세력을 향해 정치 발언을 한 거다. (…) 나아가 그것은 사법권의 침해를 구성하는 행위가 된다. 사법권 독립은 동료 판사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사법의 정치화 발언이 국민의 사법에 대한 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사법 불신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 (…) 정치 이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판결을 신뢰할 국민은 없다. 재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상소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대법원이 수많은 사건의 폭주로 해석의 통일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치 못하는 바람에 상고 제도의 합리적 개혁을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 판사가 오로지 법리에 기초해서 고뇌에 찬 심리의 결과로 내린 합리적 판결은 신뢰의 출발점이다. 사법에 대한 신뢰는 내부 통신망의 운영이나 판결에 앞선 판사의 해명이나 홍보에 의해, 더구나 정치적 비판에 의해 구축되지 않는다.”

-司法의 정치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9월 20일자 조선일보 ‘시론’ㆍ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 전문 보기

우편향 사법은 구조적 현상이다. 법관이 보수화하고 있어서다. 이들한테 필요한 건 독립이 아니다. 공론과 멀어지고 기득권과 결탁하는 길이다. 법을 농단하는 자본에게 금도는 없다.

“‘악마의 사전’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장까지 거침없는 독설과 신랄한 야유를 늘어놓은 앰브로스 비어스가 ‘사법’ 항목이라고 곱게 넘길 리 만무했으니, “충성과 납세, 개인적인 봉사에 대한 보수로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강매하는 품질 나쁜 상품”이라는 한 줄을 기어코 남겼다. 사법 종사자들의 혈압을 한껏 높여줄 이 고약한 언사를 떠올린 건 ‘원세훈 일부 무죄’ 판결 때문이다. 판결이 알려지기가 무섭게 재판장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시절 ‘사노비’(전속 재판연구관)였기 때문이라느니, 머지않은 승진 인사를 염두에 둔 재판장의 승부수라느니 여러 뒷말들이 나왔다. 개연성이 있기는 한지 법조계 사정에 정통한 이들에게 의견을 청해 봤다. (…) 대답들은 이번 판결이 이심전심의 소산일 수는 있어도 어떤 공작의 산물이기는 어렵다는 쪽으로 모아졌는데, 누군가가 정신을 퍼뜩 차리게 만드는 전혀 뜻밖의 말을 했다. “로스쿨 출신들이 법관이 되면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는 지금이 약과였다고 할지도 몰라요.”(…) 로스쿨은 뜻이 있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3년간 ‘공식’ 학비만 4천만원에서 6천만원, 이런저런 ‘비공식’ 학비를 더하면 1억원 안팎이 든다. (…)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사교육비 지출 1등을 다투는 나라에서 대학까지 마친 자녀에게 억대 학비를 댈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 지난달 발표된 ‘법조인 선발제도별 법조계 진입 유인 실증분석’이라는 논문도 부모가 최소한 소득 상위 30%에 들지 못하면 자녀들의 법조계 진입은 엄두도 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로스쿨 1~3기생 중 열에 여섯은 서울에 살고, 그중 셋은 강남3구 출신이다. (…) 퍼즐을 맞춰 볼수록 로스쿨생들의 출신 계층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런 그들이 내년부터는 사법부에도 진출한다. “제 경험으론 로스쿨생들이 보수적 입장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뽑을 때부터 출신 대학과 학점 등을 주로 보는데다 기본적으로 집안 좋은 학생들이 오잖아요. (…)”(한 로스쿨 교수)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지만, 자신의 경험과 무관한 양심이란 게 따로 존재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보수화되고 있는 사법부에 이들까지 가세하면 그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악마의 사전’에서 비어스는 ‘법관’을 “신의 권능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공무원”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살던 1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토록 지대한 권능이라면 특정 계층의 독과점을 허용해선 안 될 터인데, 우린 안전장치도 없이 반대편 길로 내달리고 있다.”

-‘원세훈 판결’이 약과라면(한겨레 ‘편집국에서’ㆍ강희철 사회부장) ☞ 전문 보기

“지난 11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공직선거법 무죄, 국정원법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 원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직원들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댓글을 단 행위는 정치 개입이 맞지만, 선거 개입으로까지 볼 수 있는지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 판사들 사이에선 ‘(사건) 기록을 보지 않았다면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된다. 방대한 수사기록과 증거, 장기간에 걸친 피고인·증인의 법정 진술과 주장, 말투·어투·표정 등의 종합 결정판이 판결이므로 기록을 보지 않은 판사는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의미다. 재판 전문가인 판사들이 어설피 판결문만 훑어보고 너도 나도 공개적 의견을 표명하기 시작한다면 사법부는 대혼란에 빠진다. (…) 그러나 법원 내 불문율은 김동진(45ㆍ사법연수원 25기)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가 12일 법원 인트라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깨졌다. 이 글의 내용은 거침이 없다. 하지만 두 가지 면에서 금도(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襟度)이란 뜻인데 엉뚱한 의미로 잘못 썼다- 기자 주)를 넘었다. 현직 판사가 확정이 되지 않은 다른 재판부(서울중앙지검 형사21부 이범균 부장판사)의 사건에 대해 선입견이 담긴 격문을 썼다는 점이다. 1심 재판장을 겨냥해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 판결”이라고 한 인신모독성 표현보다 더 심각한 건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선거개입이라고 보는 게 옳다”는 판단 부분이다. 증거 관계는 차치한 채 결론을 정해 놓고 재판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김동진과 이범균, 누가 지록위마 했나(9월 19일자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ㆍ조강수 사회부문 차장)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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