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던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가 끝났다. 하지만 여파는 영국 정치권뿐 아니라 지구촌 구석구석에 생생하게 미치고 있다.
918년 고려왕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확고한 중앙집권적 통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는 307년 만에 독립을 시도하는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가 신기하고 호기심 가는 대상이다. 스코틀랜드는 왜 영국 연방에서 독립을 꿈꾸었고 어떤 이유로 독립에 실패했을까. 독립 이유부터 향후 영국 정치권의 후폭풍까지 스코틀랜드 주민 투표에 관한 주요 사항을 문답으로 알아 본다.
1. 스코틀랜드는 왜 영국 연방에서 독립하려고 했나?
기본적으로 민족과 언어가 다르다. 잉글랜드는 앵글로 색슨족의 후예이고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의 후손이다. 언어도 잉글랜드는 영어를 사용한다. 스코틀랜드는 18세기 초반 영국 연방에 합쳐진 후 영어를 쓰지만 스코트어(스코틀랜드식 영어)와 스코틀랜드 게일어(고대 켈트어에 뿌리를 둔 언어)를 공용어로 함께 쓰고 있다.
영국 연방이라는 한 나라로 300년 넘게 묶여 있었지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대한 쓰라린 기억이 있다. 원래 비옥한 브리튼섬에 먼저 정착한 민족은 켈트족이었다. 그러나 앵글로 색슨족은 켈트족을 내쫓고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뒤 힘이 약한 스코틀랜드를 수시로 괴롭혔다.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하트’는 잉글랜드 폭정에 저항하는 스코틀랜드 전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오죽했으면 스코틀랜드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스코플랜드를 공습하자 “우리는 영국이 아니다”고 외쳤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코틀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양의 북해 유전과 가스다. 북해 생산량 중 스코틀랜드 비중이 90%로 2012년에만 51조원을 벌어들였다. 요약하면 민족과 언어 차이에다 수난의 역사, 독립 기반을 탄탄히 다져 줄 북해 유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스코틀랜드를 분리독립 투표로 이끌었다.
2. 스코틀랜드 독립이 실패한 이유는?
독립 투표 12일 전 여론 조사에서 처음으로 독립 찬성이 51%로 반대를 넘어서면서 스코틀랜드가 영국 연방에서 독립할지 모른다는 예상이 높아졌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55.7% 대 44.3%로 다소 여유 있는 차이로 부결됐다.
분리독립 투표 부결은 스코틀랜드 주민들이 미래상이 불확실한 독립보다는 현재 경제적 이해관계에 손을 들어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하면 파운드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영국 정부는 지분을 가진 대기업의 본사를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로 이전하겠다고 대놓고 윽박질렀다. 투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독립에 반대한 이유로 파운드화 사용, 일자리 등 독립에 따르는 위험 부담을 꼽은 비율이 47%로 가장 높았다. 연방의 역사, 문화, 전통에 대한 강한 애착은 28%, 자치권 확대 등 영국 연방의 약속에 대한 기대는 25% 정도였다.
3.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 어떻게 되나?
가까스로 독립투표를 부결시켰지만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라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스코틀랜드를 잡기 위해 중앙정부와 주요 정당은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쉽게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에 조세와 예산편성헌법까지 부여하기로 했는데, 역시 영국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웨일스와 북아일랜드가 유사한 정치적 요구를 하고 나올 경우 상당한 정치적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치권 확대 과정에서 헌법 개정이 필요할 경우 특히 영국 정치권의 당면한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고 해법을 찾기는 더 어려워진다. 집권 보수당 내에서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등의 자치권 확대에 대비해 잉글랜드가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잉글랜드 제1 장관직을 신설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크리스 그레일링 법무장관은 “잉글랜드에 스코틀랜드만큼의 권한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주민들이 분노할 것”이라며 “자치권 확대 이전에 스코틀랜드 의원들이 잉글랜드의 건강보험과 교육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부터 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왜 물러나나?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18일 실시된 독립투표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11월에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스코틀랜드 독립의 정치적 꿈을 버린 것도 아니고 정치를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앨릭스 수반은 독립투표 부결 뒤 연방 분리 위기를 넘긴 보수당 내에서 자치권 확대를 둘러싼 반발이 고조되는 기류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며 자신은 주민투표를 선택했지만 스코틀랜드 독립은 주민투표가 아닌 방법으로도 성취될 수 있다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그는 “줄곧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사퇴를 결정할 때는 고뇌가 없었다”며 승부사 기질을 유감 없이 보였다. 앨릭스 수반은 오는 크리스마스 이전 출판을 목표로 100일간의 투표 운동을 돌아보는 회고록 집필에 전념할 계획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이슈가 재부상할 때 언젠가 다시 정치권의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5. 영국 정치는 어디로 가나?
영국 중앙정부는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 후폭풍으로 이미 자치권 확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투표 부결 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연방 지역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대신 잉글랜드와 웨일스 관련 사안에 대한 스코틀랜드 의원의 참여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불렀다.
영국은 1999년 지방분권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에 자치의회와 자치정부를 수립했으나 잉글랜드는 자치정부가 없다. 잉글랜드를 의식한 발언인 것이다. 잉글랜드만 자치의회 없이 중앙 의회가 이를 대신해 오면서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잉글랜드 내정에 개입하는 데 잉글랜드는 그렇지 못해 왔다는 지적에 호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장 샐먼드는“스코틀랜드 주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국 정치권은 스코틀랜드 자치 확대와 관련해 11월에 합의안을 내놓고 내년 1월 관련법 발효를 약속했다. 하지만 자치권 이양 문제와 스코틀랜드의 다른 자치정부 사안 참여 금지라는 개헌 수준의 문제가 엮이면서 내년 5월 예정된 총선 때까지 영국 정치권은 계속 후폭풍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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