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에디슨의 이 말이 불편하게 다가온 건 언제부터였을까. 주어가 ‘천재’로만 한정된다면야 물론 토 달 필요가 없겠다. 영감 혹은 재능이 부단한 노력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는 걸 누가 모를까. 문제는 명언이랍시고 이 말을 아무데나 무작정 들이댄다는 거. 얼마 전 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 수업을 맡고 있는 K를 만났을 때도 나는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노력하면 뭐든 된다는 식의 전투적인 말들, 지겹기 짝이 없어.” 그러자 K는 내 불만의 각도를 살짝 교정해 주었다. “음… 애들을 가르쳐 보니 말이지, 노력하면 되기는 해. 하지만 노력조차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일종의 재능이더라고.” K는 노력 대신 ‘근성’이라는 말로 표현을 바꾸었다. 잘 안 풀려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집요함. 그것도 타고난 기질이더라는 것이다. “될 때까지 해봐야 기쁨을 느끼는 애들이 있어. 안 되면 안 되는 거려니 현재에 만족하는 애들이 있고. 행복감을 느끼는 세포가 근본적으로 다르달까.” K는 근성을 타고나지 않은 아이들이 노력의 미덕에 짓눌려 어두워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렇다고 입시가 코앞인 수험생들에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는 차마 못하니 자신의 모순도 딱한 노릇이라 했다. 악바리가 되기 싫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학교, 무던함도 일종의 성정으로 긍정해주는 학교. 우리는 언제쯤 그런 학교를 얻을 수 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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