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직결된 문제
다양한 외국기업들과 엮이면 北 지금처럼 폐쇄 엄포 못 놔
경제특구 요건 미비
통행ㆍ통신ㆍ통관 합의 더딘데 김정은 정권 의지도 부족
남북은 지난해 8월14일 제7차 당국회담에서 개성공단의 국제화에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국제화를 통한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이 필요했고, 북한도 핵ㆍ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공식화하면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외자유치를 비롯해 외부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성공단에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외국기업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지금껏 독일과 중국, 러시아 등 해외기업 30여 곳이 우리 정부에 개성공단 투자를 문의했지만 구체적 사업계획을 제시한 곳은 없다. 독일 그로쯔베커르트사가 개성공단 내 주요 봉제기업을 대상으로 바늘 판매 등을 위한 영업소를 개설해 지난달부터 영업을 하고 있지만 투자액은 1만달러(악 1,035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개성공단 국제화의 필요성
개성공단에 외국기업을 유치하는 국제화 작업은 개성공단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한 지 약 3개월 뒤인 지난해 7월14일 프랑스 정치시사잡지 ‘폴리틱 앵테나쇼날’과의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추진해 보다 안정적으로 개성공단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화와 도발을 반복하는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을 고수해오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개성공단도 남측을 압박하는 하나의 정치적 카드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이뤄진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도 우리 측 한미군사연습인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 등에 대한 반발이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역진 방지’ 장치다. 개성공단에 외국기업이 진출하면 북한이 개성공단을 남북관계의 종속변수로만 취급할 수는 없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폐쇄 가능성을 언급하는 순간 국제사회의 반발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개성공단을 이 같은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경제적 관점에서만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정경분리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북한은 최근에도 개성공단의 ‘3통’(통행ㆍ통신ㆍ통관) 문제를 해결하자는 우리의 제안에 별개의 사안인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지 등을 요구하며 거절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다양한 외국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기반시설, 법과 제도 등의 정비를 위한 방안들도 자연히 이끌어낼 수 있다. 개성공단이 앞으로 남북 간 경제특구로서 규모를 갖추며 성장하기 위해서도 국제화는 필수적이다.
개성공단 국제화의 걸림돌
개성공단 국제화의 주요 걸림돌로 거론되는 것은 이명박정부 당시 대북 투자를 금지한 5ㆍ24조치와 인터넷 서비스, 전차출입체계 전면가동 등 3통 문제의 미해결이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은 약 63달러로 약 100~300달러 선인 중국이나 동남아에 비해 경쟁력이 높지만,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실상 경제특구로서 제반 조건 등과 관련한 최소한의 국제적 요건은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통일부는 “개성공단에 대한 외국기업의 투자는 5ㆍ24조치와 별개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내기업들의 선제적 투자를 통한 개성공단의 기반시설 확충 등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인해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국내기업은 막으면서 외국기업에만 투자를 허용하는 것도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면서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5ㆍ24조치의 완화 또는 해제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3통 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남북은 지난 1월부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무선인식(RFID)를 쓰는 전자출입체계를 시범가동하고 있지만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6월26일 남북공동위원회 회의를 열고 외국기업의 유치를 위해 3통 문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노동자 임금부터 국제 수준에 맞게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났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은 3통 문제에 대해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3통 문제 해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인터넷 등이 개성공단을 통해 활성화 될 경우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정보통제가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개성공단에 적용되는 세무와 보험 등에 대해서도 남북 간 재합의를 통해 국제적인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제정한 ‘개성공업지구법’에는 ‘개성공업지구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권이 행사된다”고 규정돼 있다. 개성공단의 운영 면에서 사실상 북한의 정치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실제 북한 세무당국은 개성공단 기업들의 2013년 세금 분에 대해 면제키로 한 남북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이를 어기고 세금 납부를 독촉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일방적 행태로 인해 개성공단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내기업들의 판로 확보는 물론 해외기업 투자 유치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국제화는 북한에도 이득
이 때문에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집권 3년 차를 맞아 경제부문에 개혁ㆍ개방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선과 황금평, 개성 외에 신의주와 남포, 금강산, 백두산, 원산 등으로 북한의 경제ㆍ관광특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본격적인 대북 투자는 요원한 상황이다. 외국기업의 활동을 보장해 줄 법과 제도의 미비는 물론이고 김정은 정권이 이에 대한 정치적 의지도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개성공단이 커질수록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야 경제발전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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