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사이버 공간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지시로 18일 긴급 소집한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통해서다.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청 등 정부기관뿐 아니라 네이버 다음 등 업체 관계자들까지 참석했지만, 공표된 대응책은 ‘대대적인 단속과 엄벌’에 맞춰졌다. 서울중앙지검에 검사 5명과 수사관들로 전담팀을 신설하고,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허위사실 유포를 상시 적발하며, 명예훼손 사범은 재판에 넘겨 중형을 받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익명성과 전파력 등을 악용한 사이버 범죄의 폐해는 익히 알려져 있다. 지난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은 철없는 개인이나 범죄집단이 아닌 국가기관이 범죄의 주체가 됐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의 정점을 보여줬다. 그런데 검찰이 명예훼손에 방점을 찍어 엄단에 나선 까닭은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바로 대책회의를 지시했고, 이튿날 검찰이 즉각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정치 검찰’을 넘어 ‘청와대 검찰’를 자처하느냐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이 국가적 요구에 부응해 수사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관피아 수사’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군과 반상회까지 동원했다가 망신과 불신만 키운 유병언 수사처럼 엄정한 판단과 세심한 준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쫓기듯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대응 내용이다. 검찰은 중대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회갈등을 조장하고 대립을 유도한 경우 구속수사하고, 최초 게시자는 물론 확산에 기여한 사람도 엄벌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중대 범죄’의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한데다, ‘대통령 모독’을 ‘국민 모독’으로 규정하고 ‘국론과 사회 분열’로 이어간 대통령의 발언을 닮았다. 결국 검찰의 칼끝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으로 향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사이버 공간의 각종 범죄 행위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는 오랜 논란거리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정부의 개입이나 사법적 수단의 동원은 최소화해야 한다. 자칫 ‘위축효과’를 낳아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치적 독립성을 잃고 섣불리 빼든 칼날이 바닥난 국민의 신뢰를 뿌리까지 베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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