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최근 예산 절감을 겨냥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골자는 지금까지 예산 절감에 기여한 공무원이나 개인에게 주던 포상금을 정부 부처에도 지급하는 걸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소액을 지급하는 지금의 예산성과급 정도로는 부처ㆍ지자체 차원의 조직적 재정개혁 노력을 유도하기에 미흡하다는 게 입법 배경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내년부터 예산집행방법 또는 제도를 개선해 예산 절감 성과를 낸 부ㆍ처ㆍ청 및 지자체에 3,000만원~1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복지제도 확대 등에 따라 정부 예산이 급팽창하면서 국민의 직간접 조세부담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그런 부담감은 자연스레 혈세로 거둬들인 예산의 집행이 알뜰하고 낭비 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낳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공약가계부’를 작성하고, 예산 지출구조조정에 나선 것도 그런 요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던 셈이다. 정부가 이번에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정개혁 방향을 밝히고, 예산 절감 등을 통해 향후 5년 간 7조원 내외의 재정 여력을 확보하겠다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정부가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예산 절감 부처 포상제’를 추진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재정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왠지 미진하고 찜찜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정부든 지자체든, 예산 집행에 대한 국민적 불만의 핵심은 쓸 돈을 절약하지 않았다는데 있지 않다. 당연히 쓰지 말아야 할 일에 막대한 예산을 물쓰듯 써버리고, 그런 결정이 무책임하게 버젓이 이루어지는 관료적 타성이 답답하고 한심한 것이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드러나는 정부ㆍ지자체 등의 예산낭비 사례는 올해도 어김이 없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명재 의원(새누리당)이 최근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 받은 ‘최근 3년 간 예산낭비신고센터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울산 A구청은 국유지에 4억5,000만원을 들여 무허가 테니스장을 지었다가 그 자리에 도로공사가 진행되자 개장도 못하고 테니스장을 폐쇄했다. 인천 B구청은 ‘문화존(zone)’을 조성한다며 대로 양편의 멀쩡한 강관 가로등을 뽑고 스테인리스 가로등을 새로 설치하는데 수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기도 했다.
감사원의 최근 별도 자료에 따르면 안전행정부는 2010년 예산 21억원을 들여 ‘주민서비스 통합정보시스템’을 개선한다며 3단계 버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문제 등으로 활용도가 떨어지자 지난해 시스템을 아예 슬그머니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5년 대구 지하철 참사 후엔 정부 부처 간 유기적인 대처가 중요하다며 무려 86억원을 들여 재난정보공동활용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활용 상황을 점검해 보니 안행부가 침몰 시작 1시간20분만에야 시스템을 통해 상황보고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뿐, 청와대부터 해경, 소방방재청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예산 집행의 낭비ㆍ비효율 사례는 사실 예산 절감을 위한 적극적 노력의 유무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예산 편성과 집행을 주도하는 관료들의 무책임과 나태, 예산을 눈 먼 돈 취급하는 못된 습성이 혈세를 길 위에 뿌리는 작태를 낳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산 낭비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해소하는 지름길은 나랏돈을 알뜰하게 쓰는 걸 포상하는 게 아니라, 관료들의 무책임과 나태, 못된 습성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강화하고 엄히 징계하는 시스템부터 구축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그런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미 지자체장을 상대로 한 기존의 주민소송제를 국가 차원으로 확대한 예산 낭비 관련 국민소송제를 도입하고, 절차와 요건도 쉽게 바꾸려는 입법 논의가 2001년(이주영 당시 의원안) 이래 꾸준히 있어왔다. 특히 지난해엔 무려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헛되이 써버려 그 부문에서 ‘금자탑’을 세운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한 주민소송이 추진되면서 참여연대와 민변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예산낭비 방지를 위한 국민소송제’ 입법 공청회까지 추진됐다.
재정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부처 포상제로 문제를 에둘러 갈 게 아니라, 예산 낭비에 경종을 울릴 국민소송제 도입을 즉각 검토해야 옳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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