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누아트 그루 지음ㆍ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발행ㆍ192쪽ㆍ1만2,000원
남성 기득권에 저항하다 프랑스 혁명기에 처형된 여성 운동가 올랭프의 글
네티즌들 북펀드로 출간

남성의 역사가 기억하지 않았던 권리선언문이 있다. 무려 223년 전 쓰여진 글이다. 그 선언문은 여성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이성(理性)에게 이렇게 외쳤다. “남자여, 내 성을 억압하는 권한을 누가 그대에게 주었는가? 할 수 있다면 자연의 경영에서 성별을 구분해보라. 성별은 곳곳에서 조화롭게 동참하고 있다. 이런 예외의 원칙을 꼴사납게 걸친 건 오직 인간뿐이다.”
남성이 만든 법을 향해서는 이렇게 항변했다. “법은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 모든 여성 시민과 남성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덕성과 재능 이외의 어떠한 차별도 없이 능력에 따라 모든 명예를 동등하게 누리고 모든 공적인 직위와 직무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남성과 평등한 인간임을 망각하고 살았던 여성들의 자각도 촉구했다. 선언문 10조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의사표현이 법이 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후문(後文)에서는 “여성이여, 깨어나 그대의 권리들을 인지하라”고 적었다.
이 선언문은 그렇다고 여성들의 권리만을 주장하지 않았다. 여성들도 법률을 지키고 납세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성과 같은 시민으로서다. 그러니 “여성도 지위, 고용, 책임, 관직, 일의 분배에도 동일한 몫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계약 양식을 명시한 부분은 또 어떤가. 사실혼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의 공동 재산 소유, 별거 시의 재산 분배, 상속의 원칙까지 명시했다.
이 선언문의 명칭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이 선언문에 대해 “권리와 의무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닌 동류항이라고 인식한 것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여성주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여성들이 ‘단두대’에 오를 생각은 하지 않고 ‘연단’에만 오르려 한다는 비난”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시대를 앞서간 이 진보적 선언문을 쓴 이가 궁금할 터다. 그는 프랑스 혁명기를 살다 간 올랭프 드 구주다. 이름에까지 자신의 신념을 담은 여성이다. 죽은 남편의 것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이름인 ‘올랭프’를 따와 자신이 지었다.
드 구주는 또한 여성을 넘어 인간 약자의 권리를 두루 주창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공개적으로 ‘노예 무역’에 반대한 최초의 여성 중 하나였다.
여성의 천부인권을 부정한 남성 기득권 사회의 전복을 꿈꾸던 드 구주는 남성의 단두대에서 처형 당했다. 1793년 45세 때였다. 그리고 그의 사후 151년 만인 1944년에 이르러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됐다.
드 구주의 글을 모아 번역한 책이 한국에서 나온 건 처음이다. 네티즌 104명이 참여한 북펀드 방식으로 출간돼 더욱 특별하다.
18세기 드 구주의 양성 평등 요구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 다른 드 구주들’의 투쟁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기억하자.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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