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우리 시간은 스마트폰이 앗아가고...게다가 돈도 우리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우리 시간은 스마트폰이 앗아가고...게다가 돈도 우리가

입력
2014.09.19 18:11
0 0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발행ㆍ212쪽ㆍ1만2,000원

발언권의 민주화가 기쁨이었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저마다 주어진 스피커를 흉기처럼 휘두를 때, 예컨대 연예인의 높은 학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한 사람의 생을 짓밟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할 때, 우리는 차마 평등의 가치를 폄하하지는 못하고 다만 조용히 기다리게 된다. 공공의 정서에 휘말리지 않고 또한 공공의 지식에도 휩쓸리지 않으며,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을 적정한 온도로 발언하는 사람을.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문학동네)가 출간됐다. 스물 여섯 편의 글은 지난 2년 간 ‘씨네 21’과 ‘그라치아’ 등에 연재한 산문 중 일부를 엮은 것이다. 앞으로 석 달 간격으로 출간될 두 권의 산문집 ‘읽다’와 ‘말하다’에는 책과 독서에 관한 글과 그가 했던 강연을 풀어 쓴 글이 각각 실릴 예정이다.

‘보다’는 제목처럼 작가가 본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지하철에 탄 사람들도 보고, 과거도 돌아보고, 미래도 훔쳐 본다. 우리 사회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흘러갈지를 관망하는 작가의 시선은 그의 소설처럼 뜨겁지도 차지도 않다.

어르신들이라면 한번쯤 혀를 끌끌 찼을 ‘스마트폰에 고개 박은 이들’에 대해 그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 ‘생존 시간 카드’(부자들이 돈으로 빈자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린)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시간은 애플과 삼성이 만든 스마트폰이 공짜로 빼앗아간다. 게다가 돈도 우리가 낸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창을 통해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가 침투해 또 우리의 시간을 빼앗고…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감수성이 발달한 부자들은 점점 스마트폰에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하기 시작했다.”

책 두 권으로 묶을 만큼 많은 산문을 단기간에 쏟아낸 것은 ‘직접 경험’에 대한 작가의 갈증 때문이다. 뉴욕 등 해외에서 4년 남짓 머물다 2012년 가을 귀국한 그는 한국 사회의 고통과 분노와 기쁨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자신에게 과연 발언권이 있는 것인지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주 오랜만에 여러 매체에 동시 연재를 결심한 이유다.

그러니 이 산문들은 소설가로서 체질 개선을 위한(또는 근육 발달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소재를 택하든 결국엔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의문으로 돌아가는 소설가의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유가 그의 후속작에 어떤 모습으로 녹아 들어갈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