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상위층의 富 급속 증가는 소득세 최고세율 지속 하향조정 탓
富 재분배 염두에 둔 조세 서두를 시점...과도한 사교육, 소득불평등 키워
양질의 무상교육 대학까지 확대해야
“한국은 수십 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해온 나라이지만 이러한 성장세가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고속 성장이 불가능해지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둘러싼 많은 우려가 쏟아질 것입니다. 부의 재분배를 염두에 둔 조세정책을 미리 시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경고한 저서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3박4일 일정으로 18일 입국한 피케티 교수는 1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전문가 토론회 및 기자회견을 잇따라 갖고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이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유럽이나 일본보다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누진적 소득세 강화, 무상교육 확대 등을 해법으로 제안했다.
피케티 교수는 자신을 ‘21세기 마르크스’로 지칭하며 좌파 학자로 평가하는 일부 시각을 의식한 듯 “성장을 위해서 어느 정도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며 “그러나 일부 최상위층에 부가 집중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오히려 소외계층이 세계화에 등을 돌리는 상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공공교육 투자 늘려야”
피케티 교수는 “한국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을 언급하며 한국의 소득 분배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세청 자료를 기반으로 한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국내 소득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전체의 45%로 일본(40.5%)ㆍ프랑스(32.7%)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피케티 교수는 “책을 집필하는 동안 (김 교수의 논문과 같은)자료가 없어서 한국 관련 부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했다”며 “개정판에서는 한국 경제를 추가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21세기 자본’에 한국은 일본, 중국, 대만 등과 함께 국내 저축을 투자로 성공적으로 유도한 국가로 간략히 언급돼 있다.
소득 누진세 및 글로벌 부유세 시행을 불평등 해소 해법으로 제시해온 피케티 교수는 한국에도 과세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최상위층의 부가 크게 증가한 것은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꾸준히 하향 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 정부의 사내유보금 과세 방침에 대해 “기업의 과도한 잉여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동조한 그는 그러나 금융시장의 규제 완화에는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부유층의 재산 증식을 도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피케티 교수는 조세 정책 못지 않게 교육 투자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중산층 확대 효과는 충분히 입증됐다는 것. 그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라며 “사교육비는 서민층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만큼 정부가 나서 공공교육 투자, 무상교육 확대 등을 통해 교육 받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를 상대로 한 엘리트 교육 강화는 소득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 그는 “많은 가정이 과도한 비용을 감수하며 자녀들을 해외에 유학 보내고 있는 것이 한국의 실정인 만큼 양질의 무상교육을 대학까지 확대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불평등은 세계화의 악재”
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진단과 제언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점을 의식한 듯 피케티 교수는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책을 통해 제안했지만 모두가 이를 지지해주길 바란 것은 아니다”라며 “독자들이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결론 내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급적 쉽게 책을 쓴 것”이라고 했다. “서글픈 것은 내 책을 한 글자도 읽지 않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비치기도 했다.
피케티 교수는 “소득과 부의 분배에 대한 체계적 조사 자료가 있다면 이를 갖고 민주적 토론을 할 수 있다”면서 설문이나 자진신고 위주의 가구통계를 활용한 기존 연구보다 소득세 자료에 기반한 자신의 연구가 사회 불평등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유리하다고 자평했다.
피케티 교수는 1차대전 전비 조달을 위해 소득세가 도입됐던 프랑스 사례를 언급하며 “과거 역사를 보면 불평등 감소에는 충격적 사건들이 큰 몫을 했다”면서도 “이런 계기 없이도 민주적ㆍ평화적 방식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회가 불평등하고 불안하면 세계화에 반대하며 외국인 근로자를 공격하는 등 국수적인 성향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라며 유럽 극우화 현상을 불평등 심화와 연결지어 설명한 그는 “나는 세계화, 시장원리를 모두 지지하지만 이런 큰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 위해선 공공지출 확대, 교육정책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