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영국 여론 조사기관 유고브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여론조사를 했을 때 찬성 의견이 51%로 처음 반대(49%)를 앞섰다. 이후 전세계가 307년간 영국 연방에 속해 있던 스코틀랜드가 실제 분리독립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반대 여론에 한참 뒤지던 독립 찬성은 그때까지 한 달 사이 12%포인트 급상승했다. 이후 여론조사 결과는 엎치락뒤치락해 19일 개표 결과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실제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박빙의 승부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개표 초기부터 독립 반대가 8% 가량 앞서 나갔고 결국 반대 55.3%, 찬성 44.7%로 독립은 좌절됐다. 32개 선거구역 중 찬성 의견이 우세한 지역은 글래스고, 던디 등 4곳에 불과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기로 선택해 기쁘다”며 “큰 결정을 위해 주민투표는 필요했으며 이제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가야 한다”며 안도했다. 전문가들은 ▦독립을 막기 위한 영국 정부의 전방위적 노력 ▦기업 이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피해 우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독립 반대에 묶어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연방 해체 막아라” 영국 정부 총력전
연방 해체를 막으려는 영국 정부의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영국 연방은 국토 면적의 3분의 1을 잃는다. 또 경제력의 10%가 감소하고 인구의 10%도 사라지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다급해진 영국 정부는 대형은행들의 본사 이전 카드로 스코틀랜드를 압박했다. 영국 정부가 지분을 가진 대형은행인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와 로이드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시 본사를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도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옮기는 비상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11일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RBS 지분 80%, 로이드 지분 2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앞서 9일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스코틀랜드를 향해 “영국에서 이탈하면 파운드화 쓸 생각을 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분리독립되면 파운드화 자체의 평가절하에다 통화 및 금융 혼란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물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채찍질만 해댄 게 아니라 투표일 이틀 전인 16일에는 당근도 제시했다. 영국 의회가 독립투표 부결을 전제로 스코틀랜드 의회에 기존의 자치권에 더해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는 작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합의문을 공개한 것이다. 정부도 의회와 함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 조세징수권과 예산편성권까지 이양하는 획기적인 자치권 확대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막판에는 정치적인 중립을 고수하는 것이 원칙인 영국 연방의 상징적 존재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마저 움직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투표 직전 스코틀랜드 주민들에게 “신중하게 생각하라”며 사실상 독립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 자산가치 하락과 변화 불안감에 보수화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은 독립 후 대기업 이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더 타임스는 15일 주민투표에서 독립을 표결하면 그 충격으로 역내 집값이 평균 3만파운드(5,000만원)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립할 경우 기업들이 스코틀랜드를 떠나려 할 것이고 그 기업을 따라 이주하는 근로자들도 적지 않게 된다. 시장에 나오는 부동산 물량은 늘어나지만 그것을 소화할 인구는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이 신문은 부동산 웹사이트 주플라의 보고서를 인용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코틀랜드 집값이 평균 17.5% 빠졌지만 이번 투표 결과에 비슷한 충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들이 이전하면 일자리 감소로 소득이 줄고 가계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최대 240억배럴에 이르는 북해 석유 매장량에 대해 “2050년 채산성이 떨어져 북해유전이 소진될 것”이라는 영국 정부의 줄기찬 공세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관측된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북해 유전에서 나오는 세수를 기반으로 지금 영국 보다 월등히 나은 북유럽식 복지와 세금 인하 등을 약속했다.
연방의 안정된 체제에서 불안정한 미래를 맞아야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고 독립을 하더라도 국방, 사법, 외교 등 분야에서 풀어야 할 난제도 적지 않다. 설사 독립 찬성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2016년 3월까지 독립국으로 자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 형편이었다.
결국 스코틀랜드 민심은 변화보다는 안정, 민족적ㆍ지역적 감정이나 장밋빛 미래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득실에 더 좌우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시장은 이 같은 반대 정서를 한발 앞서 감지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 18일까지 사흘째 상승해 지난 2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 자치권 확대, 분리독립 쐐기 박을까
분리독립 투표 부결로 당분간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영국 정부는 2년 전 캐머런 총리가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던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합의라는 정치적 악수 때문에 크게 한 방 먹은 셈이어서 두 번 다시 이 이슈를 거론하려 들지 않을 게 뻔하다. 독립투표를 이끈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당수 겸 자치정부 수반도 투표에서 패하긴 했지만 이미 정치적 인지도를 쌓아 손해볼 게 없다. 그 역시 다시 무리하게 분리독립 카드를 꺼내 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은 ‘휴화산’이 아니라 여전히 ‘활화산’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44%라는 독립 찬성 비율은 무시하기 힘든 숫자다. 게다가 영국 정부와 의회가 약속한 자치권 확대 실현이 지지부진하면 바로는 아니더라도 다시 분리독립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영국 정부와 의회가 이미 스코틀랜드에 약속한 자치권 확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 때 영국 연방을 구성하는 또 다른 지역인 서부 웨일스나 아일랜드 동부 북아일랜드 주민들도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요구가 연쇄적으로 쏟아지면 개헌 작업이 진통을 겪어 자치권 확대도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분리독립 요구가 끓어오르면 영국 정국이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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