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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간의 몸을 해부하다

입력
2014.09.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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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앨더시 윌리엄스 지음ㆍ김태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발행ㆍ376쪽ㆍ1만6,000원

문학ㆍ철학ㆍ미술ㆍ음악 속에 나타난 인체에 대한 표현과 그 의미 탐색

몸은 부분의 합 이상임을 증명해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달려온 로미오는 독을 마시기 전 비통하게 말한다. “눈아, 마지막으로 보아라. 팔아, 마지막 포옹을 하라. 그리고 입술, 너 숨결의 문이여, 정당한 키스로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죽음과 영원한 계약의 도장을 찍으라.”

눈이 그저 렌즈일 뿐이고, 팔은 단순히 편리한 도구이며, 입술은 치아를 덮는 가리개에 불과하다면, 로미오의 마지막 대사가 애달프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몸의 상징성을 잘 알았고, 비유와 표현에 자주 활용했다. 그의 희곡과 시에서 인체의 각 부위가 등장하는 횟수는 다음과 같다. 심장 1,047회, 머리와 손, 눈과 귀 수백 회, 두뇌 82회, 위장 44회, 배 37회, 폐 20회, 창자 12회, 신경 9회, 신장 1회.

이 별난 통계는 호기심 많은 과학 저술가 휴 앨더시 윌리엄스가 쓴 ‘메스를 든 인문학’에서 살을 설명하는 장에 나온다. 우리 몸의 의미를 의학, 철학, 문학, 미술이 어떻게 봐왔는지 신체 부위별로 들여다보는 책이다. 렘브란트의 그림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이야기로 시작해 살, 뼈, 머리, 얼굴, 뇌, 심장, 피, 귀, 눈, 위, 손, 성기, 발, 피부 이야기를 거쳐 몸의 미래에 대한 질문으로 끝난다. 인체에 대한 인문학적 해부쯤 되겠다. 2013년 나온 원서 제목은 ‘해부학-인체의 문화사’(Anatomies-A Cultral History of the Human Body)다.

16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 중 지옥편. 왼쪽 상단에 보이는 귀가 그로테스크하다. 음욕에 대한 벌일까. 두 귀 사이에 끼워진 칼은 남성의 성기를 암시한다.
16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 중 지옥편. 왼쪽 상단에 보이는 귀가 그로테스크하다. 음욕에 대한 벌일까. 두 귀 사이에 끼워진 칼은 남성의 성기를 암시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 문학 작품, 철학의 발언, 미술의 표현 등을 동원해 몸의 인문학적 지형도를 그려 보인다.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채무자에게 요구한 1파운드의 살, 토마스 만 소설 ‘마의 산’의 주인공이 손을 찍은 엑스선 사진에서 본 죽음, 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본 철학자 플라톤의 말, 중세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기괴한 그림 ‘쾌락의 정원’ 지옥편에 그려진 칼이 꽂힌 귀 등 여러 분야에서 그러모은 자료들을 인체에 관한 의학, 과학, 역사의 에피소드와 엮어 이야기한다.

코를 설명하는 대목에는 코의 형태로 성격을 분류하려 했던 18세기 골상학의 헛된 노력과 나란히 문학 작품으로 고골의 ‘코’와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라블레’가 나온다. 고골은 사회적 부조리와 허세에 대한 풍자로, 라블레는 음탕한 수도사들을 조롱하기 위해 코를 불러냈다. 청교도혁명의 주역 올리버 크롬웰의 머리는 왜 300년 동안 꼬챙이에 꽂힌 채 비바람을 맞아야 했는지, 적의 머리를 축소해 보관하는 아마존 어떤 부족의 풍습은 어떤 생각에서 비롯됐는지는 우리 몸에서 머리가 지닌 상징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언급된다.

가끔 영화와 음악도 등장한다. 손을 설명하면서 라벨의 피아노곡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이야기하고, 생상이 관현악곡 ‘죽음의 무도’에서 실로폰으로 묘사한 덜그럭거리는 뼈를 해골의 상징과 연결하는 식이다. 중년의 네 남자가 외딴 빌라에 모여 죽을 때까지 먹는다는 내용의 1973년 칸영화제 초연작 ‘그랜드 뷔페’는 위장을 다룬 장에서 탐식 문화를 비판하는 재료로 나온다.

오지랖 넓게 서술하다 보니 묵직한 책은 아니다. 깊게 파고들기보다 슬쩍 건드리고 넘어가는 편이어서 아쉽지만, 흥미로운 장면들이 심심찮게 보여 읽기에 지루하지는 않다. 해부학 발달사에 끼어든 범죄사건과 풍속도가 그렇다. 렘브란트 그림의 주인공 툴프 박사가 활동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해부는 대중에게 공개하는 인기 오락이었다. 범죄자의 시체를 썼다. 역한 냄새를 지우려고 향을 피우고 음악까지 연주하면서 해부를 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시체 도둑이 많았다. 1752년 교수형 당한 시체를 처벌 차원에서 해부하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자 해부용 시체를 공급하는 살인자와 무덤 도굴꾼이 활개를 쳤다. 시체를 팔려고 16명을 죽인 살인범 형제, 만삭으로 혹은 출산 중에 죽은 여성을 해부하려고 20여 년 간 도굴과 살인으로 14구의 시체를 사용한 유명 외과 의사도 있다.

산만하게 느껴질 만한 순간마다 저자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들로 독자를 붙잡는다. 천재 아인슈타인의 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까. 서양의 종교회화에서 무화과 잎은 어쩌다 성기를 가리게 됐을까. 하트(♥)는 어떻게 심장의 상징이 되었을까. 뇌 스캔 증거가 법정에서 받아들여질까. 신분증에는 왜 얼굴 사진만 들어갈까.

인체의 각 부분을 따로따로 살피면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몸의 전체성을 확인한다. 몸은 부분의 합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 몸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몸은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몸은 끝없이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생명공학과 성형수술 덕분에 육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된 오늘을 이야기하면서 몸에 대한 태도와 윤리를 언급한다. 몸은 골칫거리도, 개선해야 할 기계도, 영혼의 감옥도 아니고,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곳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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