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문제 제기하면 태도로 시비

난방비리 지적한 김부선씨에 폭력시비

대통령 방탕해도 통치행위 했는지 문제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10년 넘게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바로잡기 위해 애써왔지만 해결책을 못 찾던 것이 도둑난방을 해온 전 부녀회장이 싸움을 걸고 김부선씨한테 뒤집어 씌우려는 바람에 모든 문제가 바로잡혔다. 김부선씨네 아파트 비리가 드러난 것은 물론 전국에 유사한 사례까지 조사해서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난방비를 도둑질해온 주민은 김부선씨가 반상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싸움을 걸었고 경찰에 고발해서 대중에 공개했다. 김부선씨는 ‘드세다’는 평가를 받아왔기에 행위보다는 태도를 문제 삼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폭력을 덧씌우면 매장하기 쉽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국사회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낙후하지 않다. (▶ 관련기사 보기 )

그런데도 행위가 아니라 태도를 문제 삼아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는 여전히 곳곳에서 일어난다.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인사담당 상무가 정규직 여부가 달려있는 수습직원을 오피스텔로 불러 옷을 벗어보라고 했다는 문제로 그만 두었다가 복직한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수습기간이 17개월이라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출판사는 18일 임직원 명의로 ‘드리는 말씀’에서 회사 분위기가 가족적이었고 수습기간은 6개월인데 성추행 당한 A씨가 정규직이 되는 기준에 약간 미달해서 기회를 한 번 더 주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변명을 했다. ‘자질없는 이를 받아줬더니 사고쳤다’는 뉘앙스이다. 역시 한국사회가 행위보다 태도를 문제 삼는다고 자신하지 않는다면 나오지 않을 방식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과 술을 마신 뒤 안산에 못 간다는 대리기사와 싸웠다는 기사(▶ 관련기사 보기)도 그렇다. 유족이나 국회의원의 행위는 잘못이다. 그런데 국회의장을 지낸 박희태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골프장에서 캐디에게 하도 지분거려서 참다 못한 캐디가 경찰에 고소한 사건(▶ 관련기사 보기)보다 큰 기사거리는 아니다. 공인의 권력형 비행보다는 사인끼리의 시비에 가깝다. 다섯 달 전 자식을 잃고 이유를 밝혀달랬더니 흉악범이라도 되는 양 경찰의 모진 대접을 받고 일베들의 모욕까지 견뎌야 하는 이들이 어느 날 폭발한다고 해서 ‘공인이 그럴 수 있느냐’는 비난을 받는다면 가혹하다. 더구나 이들이 시비를 했다는 것이 세월호 진상규명이라는 요구사항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 ‘참사특별위원회에 유족들이 들어가는데 왜 공인이 아니냐’고 비난을 쏟아 붓지만 세월호 특별법안 어디에도 참사특위에 유족이 들어간다는 내용이 없다. 이 법은 보수적인 대한변호사협회가 제시하는 안으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에 집중한다. 그런데도 ‘대리기사를 폭행하는 유족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가 기승을 부린다.

유족들이 세월호 특별법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엄정한 수사와 기소를 바랄 뿐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선거에 개입했는데도 국정원장이 무죄라는 사법부에 대해서 항소를 미적거리는 수사와 기소 주체(검찰)가 아니라 성역없이 사실을 밝힐 조사기구를 바란다.

내용이나 본질이 아니라 태도 시비로 고비를 돌파하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반부터 오후 다섯시반까지 7시간 동안 부재한 데 대해 시비하는 것을 ‘모독’이라고 표현하고 단속하려 든다. (▶ 관련기사 보기) ‘대통령한테 건방진 태도를 보이지 말라’는 어이없는 자세이다. 해경이 왜 구조를 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7시간 부재론으로 옮긴 것은 청와대 자신이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몰랐다(그래서 책임없다)’고 한 데서 시작됐다. 그 동안 서면과 전화 보고만 받았다니 의혹은 증폭됐다. 노무현대통령 때 대한민국 3면의 바다에 뜬 어떤 배와도 교신할 수 있는 위기상황실을 청와대에 만들어놓았는데 도대체 박 대통령은 무엇을 했기에 위기상황실을 가동하지 않고 해경의 구조태만을 버려두었는가 궁금해진 것이다.

7시간 부재에 대한 의문을 ‘모독’이라고 피해가니 궁금증은 더 커진다. 과연 세월호 그날만 부재했나. 다른 날도 대통령이 부재하는 시간이 많은가. 그 날 그 시간에 대통령이 무엇을 했든 상관이 없다. 연애를 잘하든 품성이 방탕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으로 국가를 안전하게 이끌어갈 능력이 되느냐, 그날 그 위기의 시간에 그런 통치행위를 했느냐만 중요하다. 품성론이나 태도 논란으로 문제를 비껴갈 수 없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배우 김부선.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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