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連理枝)란 말이 있다. 뿌리와 줄기가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서 하나가 되는 것인데,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부부를 뜻하는 말로 사용한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먼저 보내는 것을 매옥(埋玉), 또는 옥수(玉樹)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먼저 보낼 때 쓰던 말이었다. 동진(東晋) 성제(成帝) 때의 정치가였던 유량(庾亮ㆍ289~340년)은 외척이었지만 나라에 많은 공로를 세웠다. 그는 북방 이민족들이 차지한 북방 수복을 꿈꾸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진서(晋書) ‘유량(庾亮) 열전’에 의하면 유량을 땅에 묻을 때 하충(何充)이란 인물이 “옥나무를 땅속에 묻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슬픈 정을 이기지 못하게 하네(埋玉樹箸土中 使人情何能已已)”라고 슬퍼했는데, 이것이 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땅에 묻는 것도 매옥이라고 하게 되었다.
재혼을 속현(續絃)이라고 한다. 끊겼던 거문고 줄을 다시 이었다는 시적인 표현이다. 이것도 역시 다른 고사에서 온 것을 남녀관계에 비유한 것이다. 속현지이(續絃之耳)라는 말이 있다. 끊어 버린 거문고의 줄을 다시 잇게 한 귀라는 뜻이다. 이는 춘추시대(春秋時代ㆍ서기 전 770~403년)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라는 인물 사이의 고사이다. 백아(伯牙)는 백아(伯雅)라고도 하는데,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로서 줄이 일곱 있는 칠현금(七絃琴)을 잘 탔다. 그의 거문고 솜씨를 종자기가 알아주면서 세상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는데, 종자기가 먼저 죽자 자신의 거문고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절현(絶絃) 고사가 전해진다. 백아와 종자기처럼 죽이 잘 맞는 사이를 이름의 끝 자를 각각 따서 기아(期牙)라고도 하는데, 베이징 오페라라고도 불리는 경극(京劇)에서 ‘백아쇄금(伯牙碎琴ㆍ백아가 거문고를 부수다)’이라는 제목으로 상연되기도 했다.
끊어진 줄을 잇는 것을 속현교(續絃膠)라고 한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시에 ‘병후에 왕의를 찾아가 술 마시고 드린 노래(病後遇王倚? 贈歌)’라는 시가 있다. 두보가 병이 나은 후 왕의를 찾아가자 왕의가 정성껏 술상을 차려 대접했는데, 이에 감격해서 지은 노래다. 이 시의 첫머리가 ‘기린 뿔과 봉황 부리를 세상은 알지 못하지만/아교를 끓여서 줄을 이으니 기이함이 절로 나타났네(麟角鳳?世莫識/煎膠續弦奇自見)’라는 구절이다. 자신과 왕의 사이가 기린의 뿔과 봉황의 부리로 만든 아교로 줄을 이은 것처럼 끈끈하다는 비유이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란 책을 보면, 서해(西海)에 봉린주(鳳麟洲)가 있는데 이곳에는 선가(仙家)가 많다고 한다. 선가에서는 ‘봉황새의 부리와 기린의 뿔(鳳喙麟角)’을 고아서 ‘난교(鸞膠)라는 기름을 제조하는데, 이 기름은 이미 끊어진 궁노(弓弩)의 줄도 다시 이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접착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두보는 이 시에서 ‘오직 선생만이 내가 낫지 않은 것을 애처롭게 여겨서/나를 위해 힘껏 맛있는 술과 안주 준비했네/사람을 시켜서 향기로운 쌀을 사고/안방의 부인을 불러서 몸소 상을 차렸네(惟生哀我未平復/爲我力致美肴膳/遣人向市?香粳/喚婦出房親自饌)’라고 노래했다. 사람을 시켜서 시장에서 향기로운 쌀을 샀다는 것은 왕의도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또한 부인을 직접 불러서 상을 차리게 했다는 것은 집안일을 하는 하녀가 없다는 뜻이다. 서로 가난한 가운데 서로를 알아주는 사이였으니 난교로 이어진 사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그래서 두보의 시는 ‘단지 남은 인생 배불리 먹고/서로 아무 일 없이 오래 만나기를 바랄 뿐이네(但使殘年飽吃飯/只願無事常相見)’라고 소박하게 끝난다. 이런 고사에서 속현(續絃)이 재혼을 뜻하는 말이 되었는데, 난교로 붙인 거문고 줄처럼 끊어지지 말고 잘 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남편이 먼저 죽으면 여성을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불러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면서 평생 수절하게 했다. 그러나 아내가 먼저 죽은 남편은 1년이 지나면 재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례(儀禮) ‘상복전소(喪服傳疏)’에 “부친이 반드시 삼 년 후에 재혼하는 것은 자식의 뜻과 통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부친이 살아 있을 때 모친상을 당하면 부친과 자식이 모두 기년복(朞年服ㆍ1년복)을 입고 마친다. 자식은 삼년복을 입어야 하지만 살아 있는 부친 때문에 기년복으로 마쳤지만 마음속으로는 당연히 3년상을 치르게 된다. 그래서 부친도 자식의 마음과 통해서 3년 후에야 재혼을 한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황혼 재혼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인데, 황혼 재혼에 대한 제도적 정비는 미비한 편이다. 속현(續絃)이란 아름답고 시적인 용어처럼 제2의 인생을 돕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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