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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하나로 버텼는데... 야구배트 놓을 수 없다

입력
2014.09.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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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휴가 2주나 줘서 이상했지만 해체 발표로 이어질 줄 상상도 못해"

고양 국가대표 야구장서 훈련 계속

안형권 선수가 17일 국가대표 야구장의 실내연습장에서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안형권 선수가 17일 국가대표 야구장의 실내연습장에서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해체 소식이 전해진지 1주일이 지난 17일 경기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장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수들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파이팅을 외쳤고 실수를 하면 코치들의 매서운 질타가 이어졌다. 하지만 오전 훈련을 마치고 운동장을 빠져 나오는 선수들의 얼굴은 무거웠다. 밤 늦게까지 계속됐던 일일 훈련도 요즘은 오후 4시까지로 줄었다.

창단멤버 안형권(25)선수는 원더스 해체 발표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김성근 감독의 거취문제 정도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했던 선수들은 ‘멘붕’에 빠졌다. “당시 추석 휴가를 2주나 받았거든요. 창단 후 이런 적이 없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을 줄 몰랐습니다.”

그는 나이로는 막내급이지만 원더스 경력으로 보면 최고참이다. 전주구장 훈련 시절, 그리고 2012년 고양 국가대표 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기면서 벤치, 웨이트 시설, 불펜, 선수 라커 등 시설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배팅볼, 그물 하나에도 애착이 가죠. 특히 올해는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밤 늦게까지 연습했는데…”

안 선수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미국에 요양 중이어서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8살 때 리틀 야구단에 입단, 야구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메이저리그 팀들을 돌며 테스트를 봤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 때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원더스’ 창단 소식을 들었다.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합격한 그에게 원더스의 첫 전지훈련인 전주캠프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고 먹고 운동하는 꽉 짜인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숙소로는 4~5평 남짓한 고시원을 전전했다. 야구를 계속할지 방황했다. 그런 그의 손을 잡아 준 이가 ‘3년 룸메이트’ 설재훈(26) 선수다. “재훈이 형이랑 같이 살면서 아침에는 편의점 삼각김밥 2개와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죠. 월급이 한 달에 80만원 정도였는데 고시원비 30만원을 빼고 50만원으로 생활했으니, 많이 먹어야 할 운동선수 꼴이 말이 아니었죠. 그래도 열정 하나로 버텼습니다.”

2013년 최종 성적은 36경기에 나와 117타수 36안타 19득점 22타점 타율 0.308.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유일한 3할 타자다. 첫 해 백업선수였던 그는 이제 어엿한 원더스 주전타자가 됐다. 혹독했지만 김 감독을 만난 것도 안 선수에게는 ‘특별한 행운’이었다. “감독님이 절 포기 안 하시니 저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안 선수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나이도 어리고 군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무엇보다 영어가 유창하다. 그러다 보니 프로구단에서 ‘통역사’로 제안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안 선수는 “아직 야구공을 잡고 싶다”고 했다. “팀은 어려워졌지만 한국행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야구를 그만둬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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