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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제발

입력
2014.09.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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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근대’와 ‘근대성’은 끊임없이 소환되어 왔다. 80년대를 달구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부터 근대와 탈근대, 근대성을 둘러싼 무수한 진단과 해석, 담론을 어느 할아버지의 일기장 한 페이지, 언제 들었는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흘러간 노래 가사, 내 어머니의 수첩 속 사진 한 장으로 ‘감각’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감각이 나(너)의 일부임을 다시 ‘감각’하게 된다면,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는 2008년 개관해서 2013년 고려대 박물관으로 이관될 때까지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던 인문학박물관의 방대한 소장 자료들을 선별해서 미술관으로 가져와 재배열하고 기존의 아카이브와는 다른 맥락의 보기(읽기)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 시각문화 연구자이자 이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인 박해천과 윤원화, 현시원은 각각 자신의 또한 그들 사이에서 합의된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파편들이 입체적으로 조응할 수 있도록 미술 전시의 설치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원래 자료들이 가지고 있던 구체적인 정보들은 과감하게 생략되기도 했지만 대신 더 많은 것들을 질문하게 되었다.

책 뿐만 아니라 사설, 기사, 도표, 광고, 포스터를 비롯한 각종 기록물과 사물, 그림, 사진, 음악과 소리 등이 망라된 이 설치물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 섹션에서 기획자들이 세심하게 고려한 숨은 동선의 흐름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데, 이들의 개별적인 재미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불현듯 전시의 일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서늘한 순간을 감지할 수도 있다.

‘근대화의 과정은 시차와 거리에 따라 다양하고 불균질한 집단적 경험으로 표출되곤 한다. 해방 전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1930년대 초반생 서울 토박이와 1960년대 초반생 농촌 출신이 살아온 시간과 그들이 읽은 책들을 따라가면서 이들의 내면에 맺혔을 모더니티의 이미지를 그려본다.’

이것은 전시를 구성하는 세 개의 섹션 중 1층에 전시된 ‘모더니티의 평행우주’에 대한 요약이다. 관객들은 사각 프레임의 안팎을 넘나들며 가상의 두 주인공의 궤적을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가 경험하는 모더니티를 조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속한 15명의 인생담이 오디오북의 형식으로 제시되며 또한 195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의 다층적인 면면을 표상하는 20개의 텍스트를 직접 모아서 가져갈 수 있다.

두 번째 섹션인 ‘인간의 생산’에서는 일제강점기의 농민독본, 미군정 시기의 초등공민, 군부독재 시절의 국민교육헌장 등 인간 생산의 기획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가 지향했던 인간상과 국가가 바라는 국민을 위한 훈육의 방법들을 다시 읽게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들 또한 불러일으킨다.

이 전시의 전체가 역사 속의 개인을 통해 오늘을 집요하게 되짚는 일을 넘어 무언가 변화의 화학작용을 기대한다면 세 번째 섹션인 ‘이상한 거울들’이 내뿜은 ‘괴랄’한 에너지를 주목해 볼만 하다. ‘과거의 인쇄물들은 말의 질서에 쉽게 통합되지 않는 실마리를 간직한다’는 설명처럼 실마리는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될 지도 모른다. 뚜렷한 존재감이나 목적에서 이탈한 이미지와 시대를 비껴가는 생활의 활력이 어쩌면 가장 희망적이다. 세 개의 섹션은 각각의 질서 속에서 ‘서로 느슨한 연대를 맺고 있는데 이들간의 더욱 촘촘한 관계’는 전시도록 대신 출간된 단행본이자 기획자 세 명 외에 다섯 명의 필자가 참여한 ‘휴먼 스케일’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기획자들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박물관에 진열되었던 이 케케묵은 자료들은 위와 같은 전시의 과정을 거치면서 불가피하게 ‘작품화’ 되는 측면이 있다. 연보를 벗어난 낱낱의 기록들이 더욱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겠지만 같은 이유에서 매끈해진 점도 없지 않다. 물론 개인적 경험과 연령에 따라 관람의 방향은 매우 다를 수 있다. 전시는 21일 일요일까지. 이제 3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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