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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당연한 것을 지켜내기 힘든 시절

입력
2014.09.1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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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좌절감이 드는 경우 중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문제를 써도 써도, 정부가 무시하고 고치지 않을 때다. 하지만 그런 사안들도 법원 판결로 바로잡히는 경우를 여럿 보아왔다. 내가 그런 법원을 부러워하자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그래도 언론이 써 주기 때문에 판사가 용기를 갖는 겁니다”라고 했다. 당시에는 기자로서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위로가 고마웠는데, 지금은‘판사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더 생각난다.

허긴 왜 아니겠는가. 당연한 것을 행하는 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관전해왔다. 사실 재작년 말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댓글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나는 사건을 좀 가볍게 봤다. 북한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인다는 뜻의‘대북 심리전단’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요원들이 댓글이나 달고 있다는 그 허접함이 웃겼고(북한 사이트에 댓글을 단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월급 받고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것에 분개했던 정도였다. 관권 선거에 대해서는 “댓글 보고 투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하는 생각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국정원 사건의 본질과 실체를 뼈저리게 느낀 것은 사건 그 자체보다 댓글 사건이 경찰, 검찰, 법원을 거치며 우리 법치주의에 가한 상처를 지켜 보면서다. 상처라는 말도 부족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였으니. 지난해 9월 채동욱 검찰총장이 내쫓기고, 윤석열 국정원 대선개입 특별수사팀장이 직을 걸고 혐의를 추가한 뒤 징계 당하고, 기소 사건의 잇단 무죄 과정을 법조기자로서 지켜보며 국정원 사건이 나까지도 짓누르는 듯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 폐허 속에서 그나마 용기를 발휘하고 기본을 무너뜨리지 않은 것이 검찰이라고 생각한다. 윤 전 팀장을 비롯한 수사팀이 상부의 반대에 맞서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해 조사한 뒤, 트위터 혐의를 추가해서 공소장 변경신청서를 가지고 달려갔을 때 법원의 접수 창구는 ‘천국의 문’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터치다운’으로 11만건(법원 인정기준)의 불법 트윗들은 세상에 알려졌고, 윤 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좌천됐다. 내부비리 보다 내부고발자를 더 적으로 생각하는 조직의 논리 속에서, 수사팀에 대한 검찰 내부의 지지는 많지 않다. 하지만 검찰은 윤 전 팀장을 비롯한 수사팀에 빚을 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직 검찰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때문이니까. 국민의 신뢰 따위 필요 없다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반면 경찰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고 해도 범죄를 밝히기 보다 은폐하려 한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사건에서 경찰은 사실상 법치를 능멸한 범죄자로 전락했다.

법원은 어떤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가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고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를 선고한 것은 판례조차 무시한 것(본보 13일자 3면▶기사보기)으로 지적했으니, 더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김동진 부장판사가 이 판결을 “궤변”“법치주의는 죽었다”고 비판한 데, 누군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반응을 올린 것을 보고 우리사회가 어떤 갈증에 시달리는지 절감했다. 정의는 다수결(선거결과)을 업은 정권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는 상식과, 우리가 바라는 법의 모습에 근접해 있다고 말해주는 사법부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필요한가. 야당이나, 시민단체, 옆집 아저씨가 아니라 검찰이, 정부가, 그리고 판사가 옳은 것을 옳다고 확인해주기를, 즉 공식화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공공선의 붕괴는 그러니까 당연한 것이 너무나 힘든,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해주지 않는 ‘국가’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베 회원들의 패륜적인 언행이 노골화해도 대통령의 이해와 맞아 떨어진다면, ‘국가’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짚어주지 않는다. 넘어도 되는 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은 혼재되고 정의의 목소리는 자기 확신조차 희미해진다.

모르겠다. 이 폐허가 끝(대법원)까지 이어질까. 정권은 공직자들에게 해야 할 일을 하다가는 사생활까지 파헤쳐질 각오를 하라고 채동욱 전 총장 사건에서 알려주었으니.

이진희 사회부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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