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때 본보 신춘문예 입선 엽서
별들의 고향 초고 등 작가의 소장품
오늘부터 영인문학관에서 전시회
“1963년도 본사 ‘신춘문예’ 입선 작품에 대한 시상식을 아래와 같이 갖기로 되었습니다. 일시: 1월 19일(토). 장소: 본사 회의실. 최인호 씨의 참석을 바랍니다.”
소설가 최인호가 이 엽서를 받은 것은 고교 2학년인 열일곱 살 때였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아닌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했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라는 이유로 당선 아닌 입선 소식을 전하는 이 엽서가, 그는 그래도 반가웠나 보다. 이 손바닥만한 종이는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의 방에 보관돼 있었다.
작가의 1주기를 기념하는 전시 ‘최인호의 눈물’이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19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린다. 부인 황정숙 씨와 여백 출판사, 영인문학관이 함께 준비한 전시에는, 8절지에 빽빽하게 쓰인 ‘별들의 고향’의 초고, 아내와 연애할 때 썼던 혈기 가득한 러브레터, 박완서 이어령 등 동료 문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 유년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사진, 지금까지 출판된 책 등 고인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물건들이 두 개 층에 걸쳐 전시돼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육필 원고다. 데뷔작 ‘견습환자’부터 ‘술꾼’ ‘무서운 복수’ ‘별들의 고향’ ‘지구인’ ‘길 없는 길’ ‘상도’ ‘가족’에 이르기까지 8절지와 원고지에 빽빽하게 써 내려간 원고들이 나와 있다. 생전에 악필을 넘어 해독 불가의 필체로 유명했던 그답게, 신문사에 보낸 원고에는 기자들의 ‘번역’이 덧쓰인 흔적이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부인 황 씨는 남편의 소설이 신문에 연재될 때마다 빠짐 없이 오려 대형 스크랩북 4개를 만들었는데 맨 앞에는 고인의 필체로 “이 스크랩은 남편 최인호에 대한 마누라 황정숙의 애정이다”라고 적혀 있다.
소장품 가운데 손가락 골무와 촉이 휜 만년필에는 말년에 침샘암으로 투병했던 작가의 고통이 묻어 있다. 항암치료 때문에 손톱이 전부 빠지자 작가는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글을 썼다. 별세 이태 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를 탈고한 뒤 그는 촉이 휘어버린 만년필을 영인문학관에 가져와 기증했다.
마지막까지 펜을 잡으면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시장 한 켠에 재현한 ‘작가의 방’에 놓인 책상은 그에 대한 답변을 일부나마 대신한다. 나무로 된 앉은뱅이 책상 한 쪽에는 성모상이, 다른 한쪽에는 작가가 흘린 눈물자국이 허옇게 말라 붙어 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나무가 변색한 거지요. 너무 오래 고통 받다 간 것 같아 그게 가장 안타까워요.” 영인문학관 관장이자 문학평론가인 강인숙 씨가 말했다. “최인호 씨는 마지막까지 소년이었어요. 늘 뭔가를 가리려고 하는 어른들과 달리 그는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사회에서 소설을 상놈의 문학으로 쳤던 것을 생각하면 최인호야말로 진짜 소설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눈물로 얼룩진 책상 한 켠에는 솜으로 엉성하게 만든 눈사람이 있다. 작가가 가장 예뻐했던 외손녀 정원이가 만들어준 것이다. 딸 다혜 씨와 손녀 정원에 대한 애정을 기록한 글들은 책으로 묶여 ‘나의 딸의 딸’(여백)이라는 제목으로 25일 출간된다. 지난해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책상 위에 있던 원고를 묶어 ‘눈물’을 출간했던 여백 출판사는 이번 책이 작가의 마지막 유고집이라고 밝혔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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