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서 기존 HFC 냉매제 퇴출 제안할 듯
온실 가스 배출 문제 핑계 삼아 자국 기업 보호하려는 이중성 의심
미국 정부가 23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 대부분 실내ㆍ차량용 에어컨과 냉장고에 사용 중인 수소불화탄소(HFC) 계열 냉매제 사용을 금지하는 대신 온실가스 위험이 거의 없는 탄화불화올레핀(HFO) 계열로 대체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이 앞선 기후변화 분야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삼아 향후 통상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며 주요 에어컨ㆍ냉장고 수출국이지만 차세대 냉매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우리 기업들도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 오바마 행정부가 지지부진한 기후변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 온실가스 유발 효과에도 불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HFC 냉매제를 이른 시일 내에 퇴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WP는 정부 방침에 호응, HFC 냉매를 사용ㆍ제조하는 미국 주요 기업이 자발적으로 동참을 선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미국 최대 식품업체인 코카콜라와 최대 화학업체인 듀폰 등은 이 신문이 보도한 대로 HFC 대신 새로운 HFO 계열 냉매제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염화불화탄소(CFCㆍ프레온가스)를 대체한 HFC 냉매제가 이산화탄소의 1만배에 이를 정도로 온실가스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WP는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기존 HFC 냉매제(온난화 유발지수 1,430)를 HFO(지수 4)로 전면 대체할 경우 지구상에서 1,500만대 자동차가 단숨에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온실가스 저감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또 “주요 교역상대국이 기존 냉매제 생산을 중단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기후변화 이슈를 통상압력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냉장고 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국내 전자업체들은 여기에 맞춰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전자업체 A사 관계자는 “미국이 오래 전부터 HFC 이슈를 문제삼았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대응을 준비 중”이라며“구체적 방법은 기밀 사항이어서 공개할 수 없지만, 설령 HFC 사용을 금지하더라도 문제 없다”고 말했다. 전자업체 B사 관계자는 “미국이 HFC 사용 금지를 법제화한다면 당장 1, 2년 사이에 이뤄지긴 힘들고 여러 가지 대체재 개발과 함께 병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HFC를 금지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대체재이다. 아직까지 국내 업체들은 대체 냉매제에 대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현재 HFC를 대체할 만한 냉매제를 개발한 곳은 미국의 듀폰과 하니웰이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HFC 금지를 추진하는 배경에 미국 듀폰사 등의 로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하고 있다.
그만큼 업계에서는 미국이 HFC 냉매제 사용 금지를 환경 보호보다는 통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교토국제기후협약에 가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 1, 2위 국가이면서 교토기후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그러면서 자국 내에서 HFC 퇴출을 운운하는 이중적 행보를 보이고 있어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꼬집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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