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 하키채 잡고 모교 코치 역임... 호주 하키클럽서 활동 두 자녀 동반
"늘 비인기... 후배들 게임 즐겼으면"
아시안게임 개막을 코 앞에 둔 16일 인천 선학 하키경기장에서 자원봉사자 박현순(51)씨와 아들 이정욱(25), 딸 정아(23)씨는 개인 임무 및 현장 파악에 한창이었다. 세 가족은 대회 자원봉사를 위해 호주 시드니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박씨는 경기 진행 도우미 역할을 맡았고, 하키 상식 뿐 아니라 영어에도 능통한 정욱, 정아씨는 영어 아나운서 역할을 맡았다. 박씨는 전 대한민국 여자하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어서 대회 관계자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정욱, 정아씨도 호주에서 하키 클럽 선수로 뛰고 있으며, 각종 대회 심판도 맡고 있다
키 158㎝의 다소 작은 체구의 박씨가 하키와 인연을 맺은 건 서울 관악여상(현 관악여자정보고) 1학년이던 1980년. 당시 관악여상 핸드볼부가 해체되고 하키부가 창립돼 선수를 뽑았는데, 무작정 손을 들고 지원했다.
“체격이 좋았던 핸드볼 선수들이 선출됐어요. 담당 선생님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몇 번이나 말렸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렸죠.”
그때부터 체력 훈련을 위해 하루도 쉼 없이 흑석동 집에서 봉천동 학교까지 언덕길을 뛰어다녔다.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좋아서인지 바로 주전으로 발탁됐고 전국체전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학교 주장 자리도 꿰차 경희대에 진학한 뒤에는 6개월 만에 국가대표선수 선발전에 출전했을 만큼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국가대표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박씨는 “국가대표를 하고도 하키를 그만 둔 선후배가 많은데 전 지금도 외국에서 계속 하키를 하니 아주 행복해요.”라며 웃었다. 그는 1987년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 후에도 92년 모교인 관악여상 하키팀 코치를 맡는 등 손에서 스틱을 놓지 않았다.
그는 96년 국제 마스터 토너먼트대회를 잊지 못한다. 당장 출전이 코 앞인데 선수가 없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에 출전했던 선후배들을 불러 모았고, 심지어 출산한 지 얼마 안돼 붓기도 제대로 빠지지 않은 선수까지 억지로 비행기에 태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쓴웃음만 나오지만 그때는 정말 절박했어요. 당시 여자 하키팀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죠.”
박씨와 정욱씨의 직업은 한의사다. 박씨가 훈련 과정에서 얻은 부상 때문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한의학을 공부하게 됐다.
“하키는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비인기 종목이어서 국내에는 제대로 된 팀 조차 없어요. 그런데도 언론들은 각종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기대하곤 하죠. 힘들게 연습한 후배들이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재미있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올 겁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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