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던 직장생활 20년 머릿속 이야기가 큰 힘
독자에 희망 주고 싶어 두 번째 작품도 해피엔딩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로 코엘료, 알랭드 보통…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귀환으로 뜨거웠던 여름 서점가에서 숨은 승자는 아마도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일 듯 하다. 그의 작품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ㆍ이하 ‘100세노인’)은 유명 작가들의 연이은 작품 발표에도 문학 베스트셀러 1위를 수성하다가 하루키가 등장한 후에야 2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초기 반응이 작가의 인지도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제 다시 1위를 되찾을지 알 수 없다. 요나손은 인지도에 의존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100세노인’은 요나손의 데뷔작이다. 48세에 발표한 첫 작품으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요나손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전직 언론인이자 한때 100여명의 직원을 둔 미디어 기업의 사장이었다는 것,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지금은 모든 일을 내려놓고 스웨덴의 한적한 마을에서 아들과 함께 닭을 치며 산다는 것뿐이다. 그와 이메일로 문답을 주고 받았다. 데뷔작인 ‘100세노인’이 후속작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이하 ‘까막눈이’)와 매우 비슷하다는 지적에 그는 “일부러 그랬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_첫 소설이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
“(‘100세노인’의) 원고가 마무리 됐을 때, 책으로 출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판사 여섯 곳에 원고를 보냈다. 다섯 곳에서 거절했고 마지막 출판사에서 아주 황당한 답이 왔다. ‘절반쯤 읽었다. 출판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답장했다. ‘절반만 출간하자는 겁니까? 아니면 전부를 다 내겠다는 거요?’ 출판사와 계약한 뒤에도 3,000부 정도 팔리면 다행 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모든 게 믿기지 않는다.”
_첫 소설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쓰여졌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라고 있다. 첫 작품을 내기 전 습작으로 소설이나 산문을 쓴 적이 있나. 있다면 어떤 내용이었나.
“‘습작’이라… 난 항상 글을 썼다. 난 늘 바쁜 사람이었기에 시간이 생길 때마다 여기저기에 마구 써댔다. 내용은… 묻지 말아 달라…”
_자신에게서 작가적 기질을 발견한 건 언제인가. 그 계기는 뭔가.
“계기라… 왜인지는 모르지만 난 항상 작가였다. 하지만 데뷔작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물으면 난 47년이라고 답한다. 다른 작가였다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쓸까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내 방식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을 얻기까지가 오래 걸렸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작가가 되고 싶었다.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 시간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20년간 일주일에 7일을 일했고 하루에 최소 16시간씩 일했다. 나는 그렇게 일하는 틈틈이 여기저기에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썼다. 그 일은 내가 스트레스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됐다. 회사를 팔고 마침내 내가 글을 쓸 시간을 갖게 됐을 때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스스로 정체성이 없다고 느껴졌고 지금이야말로 작가가 될 때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내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데도 도움을 줬다.”
_지금은 모든 일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당신으로 하여금 펜을 들게 만드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뉴스와 신문에 비친 불합리한 세상? 고통 받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 아니면 일상의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펜을 드나.
“내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 중 절반은 아마 허풍이었을 거다. 그러니 이야기를 지어 내는 것과 사람들을 웃기는 게 늘 내 삶을 둘러싸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펜을 드는 이유? 나는 글 쓰는 게 재미있다.”
_기자와 미디어 기업의 경영인으로 오랫동안 언론계에 종사했다. 그 경험이 작품 내용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글쎄, 책 속에 내가 일부러 묘사를 한 부분은 거의 없다. 그냥 내 머릿속에서 등장인물들이 행동하고 말하는 그대로를 옮겨 적었을 뿐이다. 이게 기자로 일하던 시절의 영향일까?”
_당신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유머가 있다(실제로 한국 독자들의 대체적인 반응도 ‘재미있다’이다). 곳곳에 빽빽하게 유머를 배치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아니면 당신이 그냥 유머러스한 사람이라서?
“한국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었다니 기쁘다. 유머와 풍자는 심각한 사태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며, 책을 끝까지 읽고 메시지를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한 도구다.”
_두 작품 모두 해피엔딩이고 앞으로 당신이 쓸 소설도 왠지 해피엔딩일 듯한 느낌을 준다. 혹자는 작가가 약자들에게 주는 위로라고 했는데 이 말에 동의하나.
“세 번째 책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만약 이미 썼다 해도, 결말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키고 싶다. 작가는 독자에게 작품을 읽고 어떤 메시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20세기는 전쟁, 갈등, 살상으로 얼룩진 최악의 세기였다. 독자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것을 흑백으로만 보지 말고 중간색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은 아주 명확한 예이다. 아모스 오즈가 이에 대해 훌륭한 책을 썼는데 제목은 ‘광신도를 치료하는 법(How to Cure a Fanatic)’이다. 갈등을 끝내는 데는 유머가 최고다. 그리고 알란 칼손이라면 이렇게 덧붙이겠지. ‘거기에 보드카 한 병도!’”
_당신의 소설을 보고 나면 빠른 전개와 박진감 있는 구성 때문에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다(특히 ‘100세노인’은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또는 그 밖에 즐겨 하는 취미가 있다면.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블루스 브라더스’다. 적어도 열 번 정도 본 기억이 나는데 볼 때마다 항상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존 클리즈는 나를 아주 많이 웃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주인공은 아마도 ‘아라비아의 로렌스’일 것이다. 나는 그가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듣는 음악은 내 기분에 따라 정말 많이 달라진다. 나는 오페라도 아주 좋아한다. 물론 독서도 취미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야로슬라프 하셰크의 ‘병사 슈베이크’,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말하자면, 아시다시피 좀 이상한 사람이다),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걸작 ‘백 년 동안의 고독’.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정말 매력적이다. 나는 스포츠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현재 파리생제르맹에서 뛰는 스웨덴 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다. 로저 페더러나 비외른 보리 같은 유명 테니스 선수도 좋아하는데 그들과 술 한잔 하면 소원이 없겠다. 언제든 쏠 준비가 되어 있는데…”
_후속작인 ‘까막눈이’가 전작과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알고 있다. 의도적으로 그랬다! 나는 곧잘 내 두 작품에 대해 ‘같다, 같지만 다르다’고 말하곤 한다. 두 번째 소설에 쓰인 역사적 사실이 좀 더 복잡하려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서의 삶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상기시키고 근본주의와 편협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출간된 뒤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사인회를 열었는데 아주 많은 사람이 내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거의 전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첫 번째 책이 정말 좋았어요. 신작도 꼭 그와 같았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내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것 같다.”
_앞으로 쓸 작품도 앞의 두 작품과 비슷할까. 차기작에 대해 힌트를 달라.
“내 노트북컴퓨터에 폴더가 하나 있긴 한데… 음… 그냥 그렇다는 거다. 앞서도 말했지만 다음 작품에 대해서 꼭 얘기해야만 하는지 내가 묻고 싶다. 그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_생각보다 화려하게 시작된 제2의 인생이 스스로도 낯설 듯 하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소설 출간 외에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알려달라.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아들이다. 예전에는 성공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없었다. 지금이야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책을 더 많이 파는 것보다, 내 아들을 제대로 키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