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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업데이트 하시겠습니까

입력
2014.09.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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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열 때마다 근 열흘째 ‘업데이트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고 뭔가를 권하는 팝업 창을 더러 봐왔지만 이번에는 며칠 뒤에 보자거나 한동안 말 걸지 말라는 회피나 유예의 선택지가 없다. 지금껏 별 불편 없었고, 섣불리 그런 제안에 응했다가 낯설어진 사용환경에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는 터여서 나는 매번 거절 항목을 클릭한다. 하지만 나의 거부는 컴퓨터를 끄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프로그램은 내가 지쳐 항복(?)할 때까지 들이댈 태세다.

같은 질문을 거듭 듣다 보면 물음의 요지가 흐릿해지면서 자명한 것들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찬찬히 질문 내용을 다시 읽다가 문득 든 생각. ‘지금 업데이트하라는 게 실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나 아닐까.’편의로 가장한 시스템 로열티의 요구. 따르지 않겠다면 따라오지 말라는 청유의 형식을 띤 완곡한 명령 혹은 탈락과 배제의 엄포. 한동안은 버티겠지만 조만간 프로그램이 원하는 바에 순응할 공산이 크다.

SNS 서비스를 소극적으로나마 들여다보게 된 것도 그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조금씩 화제에서 소외되고 흐름에서 점점 멀어진다 싶어도 낯선 용어에서부터 사용법까지 새로 익혀야 할 수고가 싫어 괜한 트집까지 잡아가며 외면하던 터였다. 그러다 내가 욕망하지 않던 내 안의 욕망과 필요에 앞선 결핍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내가 낯설게 느껴진 어느 날 체념하듯 한 네트워크의 변방으로 주뼛주뼛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 느린 수동성에도 불구하고 근래의 나는 SNS에 꽤나 중독돼 뉴스를 비롯한 요긴한 소식과 정보를 얻곤 한다. 어쩌면 컴퓨터가 권하는 저 프로그램의 업데이트도 내게 유익한 뭔가를 줄 가능성이 높다. 필요에 부응하고 때로는 앞지르기도 해야 프로그램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폭넓게 쓰이는 ‘경쟁’이라는 말이 ‘사투’로 빠르게 수렴해가는 현실의 첨단에 그 산업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듯도 하다. 그러고 보면 SNS에서 내가 추종하는 이들도 대부분 나와는 상반된 유형의 이용자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적극적이고 자발적이고 또 저돌적이다. 그리고 대체로 기민하다. 한 마디로 경쟁력이 있다.

몇 년 전 이맘때 어느 밤 서울 불광동 오르막 찻길에서 리어카를 본 적이 있다. 근래엔 좀처럼 보기 힘든 행상 리어카여서 이채롭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쳤는데, 한참을 달리다 불쑥, 또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따금, 회피했던 질문처럼 그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을까. 얼마나 자주, 또 오래 그 길을 오갔을까.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그날 남자가 끌고 여자가 미는 리어카의 속도가 차선의 흐름을 방해하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동네를 누비다 보면 다급하고 난처한 경우도 겪을 것이다. 어쩌다 업데이트하지 못한 생계의 처방이 경제속도 60km의 도로 위에서 난폭하게 휘둘리는 상상. 나를 비롯한 누군가의 어떤 처지를 그 리어카나 리어카 부부에게 투사해 (자기)연민에 젖어들 때도 있다.

뒤처지면 죽는다는 불안감에 모두가 업데이트를 서두르고, 그렇게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기 바빠 개인이 점점 고립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단자화로 공적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도 한다. 연민과 공감, 유대의 광장을 이야기하지만, 돌아서면 나부터 너무 늦지 않게 뭔가를 업데이트하고 또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자녀 교육서부터 취업, 재테크, 하다못해 습관이라도 좀 더 경쟁력 있게.

미시적 삶에서 그렇게 알게 모르게, 배제와 탈락의 기획에 아금바르게 부역하면서 아주 가끔 리어카와 나란히 느리게 걷는 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제 할 말 하기에도 바빠진 세상에서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그러니 어쩌잔 말이냐는 반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그러므로 최대한 위선을 감추고 자기모멸을 견디면서 가능한 한 위선해야 한다는 생각. 위선도 선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다.

최윤필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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