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새로운 췌장암 치료제인 ‘리아백스주(사진)’를 일부 환자에게 쓸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국내 생명과학기업 ‘카엘젬백스’가 임상시험 중인 췌장암 치료 후보물질을 보유한 노르웨이 기업 ‘젬백스AS’를 2008년 인수해 상용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리아백스주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21번째 신약으로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보도한 기사들 중에는 리아백스주를 ‘치료제’가 아닌 ‘치료백신’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습니다. 카엘젬백스가 내놓은 홍보자료에 리아백스주가 치료백신이라고 표기돼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백신은 생체에 인위적으로 면역기능을 더해주는 약입니다. 그래서 백신하면 예방 효과를 떠올리게 되지요. 식약처는 리아백스주의 치료 효과만을 허가했습니다. 환자에게 백신이 아니라 치료제로만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개발사가 리아백스주를 치료백신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해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는 기존 치료제(항암제)와 달리 암세포가 파괴되도록 면역반응을 활성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론 췌장암 예방도 가능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지만 카엘젬백스 관계자도 “백신으로서의 예방 효과가 실제로 입증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치료백신’이라는 용어는 국제학계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 식약처는 허가 절차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자국 기업 덴드리온이 개발한 전립선암 약 ‘프로벤지’를 치료백신으로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프로벤지 역시 ‘예방’ 효과가 별도로 입증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암을 막아주는 백신이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접종을 고려해볼 겁니다. 현재 나와 있는 유일한 암 백신인 자궁경부암 백신이 제약사의 효자 품목으로 떠오른 이유이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췌장암 ‘치료백신’이라는 용어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게다가 리아백스주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라도 모두 쓸 수 있는 약이 아닙니다. 통상적인 임상시험 절차를 완료하지 않았지만, 워낙 치료가 어려운 췌장암의 특성을 고려해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환자에게만 처방하도록 식약처가 ‘맞춤형 허가’를 내줬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제약사나 생명과학기업이 복제약 만드는데 혈안이 돼 있는 동안 될 성 부른 신약 후보물질을 알아보고 수년 간 사활을 건 투자로 상용화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리아백스주의 가치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혼란을 계기로 치료백신의 정의와 허가 절차까지 분명해 진다면, 리아백스주는 더 의미 있는 제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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