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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그리움 품은 오솔길 따라…가을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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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그리움 품은 오솔길 따라…가을이 오네

입력
2014.09.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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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 오솔길 1코스 6구간(탄탄대로의 길). 소나무 울창하고 폭신한 흙길에 내려 앉은 가을 볕이 곱다. 이 정겨운 길을 따라 가을이 온다.
정읍사 오솔길 1코스 6구간(탄탄대로의 길). 소나무 울창하고 폭신한 흙길에 내려 앉은 가을 볕이 곱다. 이 정겨운 길을 따라 가을이 온다.

문득 가을. 가느다란 바람, 잎사귀의 작은 떨림에도 그리움이 느닷없이 솟구친다. 행상 나간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은 망부석(望夫石)이 됐다. 백제가요 ‘정읍사’에 깃든 이야기. 이 노래의 무대가 전북 정읍, 정읍사를 테마로 만든 길이 정읍사 오솔길이다. 정다운 흙길, 푸른 소나무 숲 여기저기에 영겁의 시간 흘러도 변치 않을 그리움이 오롯하다. 가을은, 이 그리움의 길을 따라 온다.

정읍사 오솔길 걷다 바라본 풍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호남정맥의 고당산이다. 옆으로 망대봉, 칠보산 줄기가 뻗었다.
정읍사 오솔길 걷다 바라본 풍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호남정맥의 고당산이다. 옆으로 망대봉, 칠보산 줄기가 뻗었다.

●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가는 정겨운 길

정읍사에 깃든 이야기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렇게 전한다. ‘정읍현(井邑縣)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밤길에 위해(危害)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나타낸 노래이다. 배경 설화를 보면,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던 언덕에는 망부석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그러나 ‘현의 북쪽 10리에 있었다’는 망부석의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정읍사공원이 초산동 아양산 중턱에 있다. 정비공사중이라 사위 부산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기다리는 정읍사 여인(동상)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정읍사 오솔길은 세 코스로 나뉜다. 1코스는 정읍사공원에서 내장산 기슭 월영마을(6.4km)까지 간다. 2코스는 내장호수를 한 바퀴 돌고(4.5km), 3코스는 내장호수 옆 내장산문화광장에서 시내를 관통하는 정읍천을 따라 정읍사공원 들머리까지(6.2km) 이어진다. 전 구간을 다 걸으면 다시 출발점이다. 다 걷기 부담스럽다면, 걷고 싶은 코스 선택해 걷는다. 3코스는 자전거전용 도로가 조성돼 있으니 가을날 자전거 타기에 관심 있다면 기억한다.

1코스가 정읍사의 정서를 닮았다. 정읍사공원 옆, 전북과학대학교 맞은편(정읍농악전수회관 옆)에서 걷기 시작한다. 소나무 숲 사이로 폭신한 흙길이 능선타고 이어진다. 숲 그늘 가르며 가을바람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난다. 곧 먹먹해지는 마음. 가을은 이렇다. 미세한 자연의 움직임일지라도 가슴에 사무치는 계절. 이 헛헛함에 한바탕 몸서리쳐야 가을이 온 거다.

정읍사 오솔길 1코스 '언약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자물쇠들.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들이 이 정겨운 오솔길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정읍사 오솔길 1코스 '언약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자물쇠들.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들이 이 정겨운 오솔길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1코스의 첫 구간은 ‘만남의 길’이다. 1코스는 모두 7구간으로 이뤄진다. 각 구간은 주제가 있다. ‘만남’ ‘환희’ ‘고뇌’ ‘언약’ ‘실천’ ‘탄탄대로’ ‘지킴’ 등이다. 삶의 여정을 표현하는 것 같은 명칭들. 정읍사 곱씹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길 걸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알아두라는 취지일 거다. 각 구간이 시작되는 곳에서 숨 고르며 단어들 되새겨 본다. 세상 수많은 우연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또 그 사람으로 인해 삶이 바뀐다고 생각하면, 만남은 참 마음 들뜨게 하고, 소중하며,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는, 이런 설렘 속에 만났던 이들이다. 가파른 고개 넘고 나면 환희, 다시 나타나는 고개 앞에서는 고뇌, 살다가 이런 굴곡 만나면 같이 이겨내자는 언약과 실천, 탄탄대로처럼 평탄한 일상을 즐기는 가운데 두 사람만의 맹세를 지키는 삶… 나름의 의미부여 하며 걷다보면, 없던 사랑도 생긴다. 이 길의 매력이 이거다. 이러니 누군가 함께 걸으면 더 좋을 길이다.

길은 참 소박하다. 동네 뒷산처럼 푸근하다. 아주 지루하지도 않다. 발아래 들판과 마을과 도로가 나타나 눈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고, 험준한 봉우리 못지않은 ‘깔딱고개’가 등장해 등산의 재미도 선사한다. 불쑥 나타나는 은밀한 숲은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고즈넉하니 마음 편안해지고, 솔잎 쌓인 오솔길은 융단처럼 폭신해 걸음이 수월하다. 지칠 때마다 나타나는 쉼터는 또 어찌나 반가운지… 가을 볕, 가을바람 맞으며 마음껏 게으름 부리니 천혜의 휴식처가 따로 없다. 두꺼비 닮은 바위도 볼 수 있다. 생김새가 영락없다. 시집 갈 때 여자들이 머리 올린 모습 같다고 이 마을 사람들은‘머리 얹은 바우’라고도 한단다.

두꺼비바위가 있는, 언약의 길(4구간)이 시작되는 곳, 빨간 ‘사랑의 언약함’을 보면 그 따스함에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이 옆에는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숱한 시간 흘러도 변치 않을, 이 세상 수많은 사랑들이 오솔길에 부려져 있다.

실천의 길(5구간) 까지는 완만한 경사가 끝이 없다. 탄탄대로의 길(6구간)은 이름처럼 길이 판판하고 나무가 울창하다. 길은 지킴의 길(7구간)을 지나고 시누대숲을 관통해 월영마을에서 끝난다. 3시간쯤 걸었다. 그리운 것들, 실컷 그리워하고 나면 마음이 가을 하늘처럼 넓어지고 맑아진다.

내장호. 호수를 에둘러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내장호. 호수를 에둘러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 평온한 호수 옆으로 숨 가쁜 역사 흐르고

월영마을 앞에 있는 내장산문화광장 인근이 내장호수다. 정읍사오솔길 2코스는 이 호수를 한 바퀴 돈다. 수면은 유리처럼 매끈하고 물새들이 한가롭게 헤엄친다. 가을 살포시 내려앉는 순간이 이리도 평온하다. 옆으로 내장산이 우뚝하다. 길 따라가면 내장산수목원이 나온다. 대상그룹이 조성한 수목원인데, 내장산 자생수목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목류와 초화류가 심어져 있다. 숨 고르며 쉬어갈 곳으로 손색없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비.

수목원 옆에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이 있다. 그날의 치열했던 역사가 눈앞에 아련하다.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말 외세를 물리치고 압정에 저항해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려 했던 민중 항쟁이었다. 또 봉건적 신분제를 철폐하고 민중이 사회의 주인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자 하는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사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가 바로 정읍이다. 이평면 하송리에는 봉기의 빌미를 제공했던 만석보터가 있다. 만석보를 쌓을 때 고부(정읍의 옛 지명) 군수 조병갑이 부당한 세금을 물리는 등 학정을 일삼았다. 가뭄으로 흉년까지 들자 생계를 위해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만석보는 관아를 점령한 후 일부 농민들이 무너뜨렸다고 전한다. 만석보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말목장터는 동학농민군이 관아로 진격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이를 비롯해 30여 곳의 유적지가 정읍 곳곳에 산재해 있으니 시간 나면 돌아본다. 다시 호수, 역사는 숨 가쁜데 호수는 여전히 평온하다. 생태공원 지나고 바람 따라 걷다보면 2코스 출발점이다. 2시간 쯤 걸었다.

정읍천 천변자전거도로(정읍사 오솔길 3코스)
정읍천 천변자전거도로(정읍사 오솔길 3코스)

내장산문화광장에서 정읍사공원 들머리까지가 정읍사오솔길 3코스다. 정읍천 따라가는 자전거도로다. 광장과 공원에 각각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데, 출발점에서 빌려 도착점에서 반납할 수 있다. 이러니 자전거 이용해 달려본다. 바람 참 시원하다. 약 30분쯤 달리면 정읍사공원 들머리다. 걷는 사람들도 많다. 천변에 코스모스 군데군데 피었다.

3코스 걷지 않겠다면, 정읍 왔으니 내장산은 구경한다. 내장호수에서 멀지 않다. 산세가 아름다워 일찌감치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린 명산이다. 산행은 본격 단풍시즌까지 미루더라도, 그 유명한 내장사까지는 걸어본다.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단풍나무 터널의 자태는, 꼭 가을 아니라도 아름답고 우아하다. 아기 손 닮은 잎사귀(그래서 애기단풍이다)가 울긋불긋하게 변신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기억해둔다.

내장사 정혜루.
내장사 정혜루.

단풍 기다리다 안달 난 마음 달래며 걷다보면 내장사다. 백제시대 사찰인데, 지금의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 새로 지었다. 법당 앞 사리탑 알현하고, 지붕 너머 보이는 내장산의 웅장한 준봉들 구경한다. 그리고 정혜루 앞, 연못가 고목 아래 앉아 풍경 소리 들으며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맞는다.

● 여행메모

정읍사 오솔길은 총 3코스로 이뤄졌다. 1코스 정읍사공원→월영마을(6.4km? 약 3시간). 2코스 내장호수 순환코스(4.5km? 약 2시간), 3코스 내장산문화광장에서 정읍천 따라 정읍사공원 들머리까지(6.2km?자전거 이용 시 약 30분). 전체를 한번에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1코스를 걸은 후 자전거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가장 수월하다. 정읍사공원과 내장산문화광장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요금은 성인 1인 기준 1,000원. 반납은 두 곳 어디서든 가능하다. 콜택시(063-533-4114)를 이용하면 요금이 약 6,500원 나온다.

내장사 입구에 산채정식, 비빔밥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많다. 정읍사공원 앞 해물칼국수 전문 음식점인 아양촌, 정읍사명품한우관 등은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이다.

정읍=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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