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김모(25)씨는 얼마 전부터 자기가 꾸민 물병에 커피 등 음료수를 담아 들고 다닌다. 카페에서 또래 여성들이 비슷한 물병을 갖고 있는 걸 본 게 계기였다. 유심히 보니 병마다 무늬와 문구가 달랐다. 늘 남들과 달라 보이는 데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그 병이 고유명사처럼 ‘보틀(bottle)’로 불리고 ‘나만의 보틀 꾸미기’가 유행이란 사실을 알았다. 김씨는 “앞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좀 더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꾸민 휴대용 투명 물병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일명 보틀이다. ‘에코’(환경 중시) 시류를 타고 퍼진 ‘텀블러’(휴대용 컵)의 진화 형태인 셈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개인이 물병을 꾸미는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보틀은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원통형 물병이다. 얼핏 보면 텀블러 같지만 보온과 보랭이 안 돼 병 표면에 물방울이 자주 맺힌다. 대신 가격이 싸고 무게가 가볍다. 2012년 일본 생활용품업체 ‘투데이즈 스페셜’이 개점하면서 물통제조업체 ‘리버스’가 2000년부터 만든 민무늬 물병에 ‘마이보틀(MY BOTTLE)’이란 문구를 인쇄해 판매하기 시작한 게 시초다.
무엇보다 ‘패셔너블’하다는 점이 가장 큰 인기 요인이다. 시판 초기에 희소한 명품 이미지가 구축되면서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입 소문이 났다. 속이 훤히 보여 깔끔하고 뭘 넣냐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단 점과 친환경 인상을 준단 점도 매력적이다. 실용성도 한몫 하고 있다. 주둥이가 커 음료는 물론 과일도 담을 수 있고 씻기도 용이하다. 텀블러와 달리 마개를 이중 처리해 내용물이 밖으로 새 나올 염려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보틀의 성가가 높아지자 업체도 하나 둘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일본 업체의 마이보틀이 국내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유사한 상품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 밀폐용기 제작업체 ‘락앤락’이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비스프리 잇 보틀’을, 프랜차이즈 카페 ‘망고식스’가 마이보틀을 흉내 낸 ‘식스 보틀’을 각각 출시한 데 이어, 7월엔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럭키 보틀’을 선보이면서 치열해지는 ‘보틀 경쟁’에 가세했다.

보틀 사랑은 구매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블로그와 SNS를 통해 최근 퍼지고 있는 ‘보틀 DIY(직접 제작)’, ‘보틀 스티커 제작’ 같은 글은 자기가 직접 장식한 보틀을 소개하는 내용이나 꾸미기 관련 정보 등을 담고 있다. 보틀 꾸미기 방식은 두 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새기거나 디자인하는 ‘표현’형과 케이스나 주머니를 만들어 보틀 표면 결로(結露) 현상 피해를 막는 ‘실속’형이다. 글자 새기는 방법은 펜을 사용해 그리는 간단한 작업부터 시트(덮개)를 붙이고 광학 필름(OHP)을 활용하는 작업까지 여러 가지다. 직접 제작에 서툰 이들을 겨냥해 보틀용 스티커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있다. 케이스 제작법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뜨개질 제작 케이스를 소개한 인터넷 블로그 바로 가기).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허경옥 교수는 “화려한 기존 디자인 대신 단순 투명한 몸통만으로 새로움을 만들어냈다는 게 보틀의 인기 비결”이라며 “남들에게 돋보이고 싶어하는 젊은층의 욕망이 투명한 물병과 결합하면서 보틀 꾸미기 형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강병조 인턴기자(한성대 영문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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