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중 신호위반 사고 운전자에 벌금 300만원 약식명령 처리 등
사건 왜곡해도 걸러 낼 방법 없어… "피해자에 결과 알리도록 개선해야"
“동승한 아내가 유산하고, 차량 수리비가 500만원이나 나왔는데 ‘경미한 접촉사고’라는 게 말이 됩니까? 경찰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경기 일산에 사는 유모(34)씨는 올해 3월 14일 오전 2시쯤 카페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고양종합운동장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유씨의 차량을 술을 마신 40대 여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뒤에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이들 부부는 허리 통증으로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나흘 후 유씨는 아내가 임신 3주 정도 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첫 번째 아이는 얼마 후 유산됐다.
사고 한 달 후 유씨는 보험사에 차량 견인비 10만원을 청구하기 위해 경찰서에서 ‘교통사고 사실 확인원’을 발급받고 아연실색했다. 차량 뒷유리와 트렁크가 부서져 수리비가 500만원이 넘게 나오는 큰 사고였는데도 문서에는 ‘대물 피해액 10만원’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씨가 이 문서를 따로 떼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고는 대물 피해액 10만원, 전치 2주인 사고로 처리됐다.
유씨는 곧장 사건을 처리했던 경기 일산경찰서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검찰로 송치된 상태였다.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가해자는 이후 공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약식명령으로 벌금 300만원을 내는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교통사고 전문인 정창래 변호사는 “벌금 300만원은 인적, 물적 피해가 거의 없다고 본 경우”라며 “음주 중 신호위반으로 사고를 냈으므로 피해가 제대로 기재됐다면 약식명령은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술한 교통사고 처리에 ‘가해자 봐주기’ 의혹까지 불거지자 일산서 청문감사관실은 사건을 담당했던 A경사의 책임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교통사고 담당 경찰관은 파손 차량의 견적서가 나오면 초기에 임의로 입력한 대물 피해액을 전산시스템에서 정확한 액수로 수정해야 하지만 A경사는 하지 않았다. 또 아내의 유산에 대해 추가로 진단서를 제출하려는 유씨를 만류해 결과적으로 피해 사실을 축소했다. 이에 대해 A경사는 “피해액 정정은 미처 신경 쓰지 못했고, 진단서 제출을 막았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유씨 사례와 같이 교통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사건 처리과정을 파악하려면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경찰이 실수나 고의로 결과를 왜곡해도 걸러낼 방법이 마땅히 없다. 나중에 피해가 축소됐는지 알게 되더라도 가해자 처벌이 종결된 경우가 많아 통계도 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용대 법무법인 현인 변호사는 “교통사고 처리과정을 투명하게 알리라고 법에서 강제한 것도 아니어서 경찰 입장에서는 귀찮아하는 측면이 있다”며 “피해자에게 사건처리 결과를 알려주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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