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정통성 관련 부담 느낀듯… 항소 포기 땐 '눈치보기' 역풍
형식적으로라도 액션 취할 듯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지난 11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대선개입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공식 반응은 이게 전부였다. 사실상 아무런 메시지도 담기지 않은,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에 불과했다. 14일 현재까지도 검찰은 여전히 ‘침묵’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 사건에서 무죄가 났는데도 검찰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당장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5일, 직파간첩 혐의로 기소된 홍모(41)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윤 차장검사는 곧바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법원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지나친 형식논리로 증거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사건 실체에 눈을 감은 채 ‘무죄를 위한 무죄’를 쓴 게 아닌가 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검찰 입장”이라는 강경한 표현도 구사했다.
그동안 정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의 무죄 선고에 검찰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게 일반적이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다룬 ‘PD수첩’ 제작진의 명예훼손 사건(무죄 확정)에 대한 1심 판결 직후 검찰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즉시 항소 뜻을 밝혔고, 한명숙 전 총리의 5만달러 뇌물 사건(무죄 확정) 때에도 “돈 전달자(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은 변함없이 유지됐는데도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은 건 수긍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의 이른바 ‘공중 부양’ 사건(벌금 300만원 확정)의 1심 무죄 선고 땐 아예 대검찰청 공안부가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어떻게 무죄인가”라고 반박자료까지 냈다. 국정원 대선개입 무죄에 대한 검찰의 ‘무반응’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물론 단순 비교는 어렵다. 이번 사건은 수사 및 기소단계에서 수사팀 내부(특수통 대 공안통)는 물론,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 사이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놓고 상당한 마찰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또 국정원의 대선개입 인정 여부는 박근혜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검찰 수뇌부가 항소 방침을 언급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일단 국정원법 유죄만 놓고 봐도 “집행유예는 너무 가벼운 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원 전 원장 측이 항소 방침을 밝힌 상태에서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 ‘피고인 불이익 변경금지의 원칙’에 따라 1심보다 형이 높아질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 ‘양형부당’을 이유로라도 항소장을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
최대 관심사인 선거법 위반 부분 역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정권 눈치보기’라는 역풍이 불 게 뻔해 형식적으로라도 항소 대상에는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팀 입장에선 검사로서의 ‘목숨’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인 수사였는데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개입 댓글이나 트윗활동에 대해선 법원의 판단조차 못 받았던 만큼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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