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의 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10년 전 어느 날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집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꼭 필요했던 뭔가를 서둘러 가져와야 했다. 급한 마음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갈 즈음 집 근처 전철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달려 승차권을 내려는데, 순간 한 소녀가 눈에 확 들어왔다. 16, 17세 쯤 돼 보이는 소녀는 꽤 마른데다 한 눈에 보기에도 지체장애의 정도가 심했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던 탓에 지하철을 타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내 관심은 온통 소녀에게 쏠렸다. 몹시 다급한 순간이었지만 그대로 지나갈 수가 없었다. 약간의 망설임을 물리치고 이내 발길을 돌려 소녀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도와줄까요?” 웃음으로 화답한 소녀의 팔을 붙들고 곧바로 계단을 향했다. 선한 짓(?)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내 일이 급하다는 욕심 사이에서 나의 몸은 거침없이 계단을 타고 올랐다. 조금 전 달려 내려올 때와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소녀의 팔을 붙든 채 족히 80여 개나 됐을 계단을 쉼 없이 오르자 마침 지하철이 때맞춰 도착했다. 얼른 소녀를 태우고는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기 위해 소녀의 얼굴을 살피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감사함과 당혹스러움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가득 적신 땀은 더위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곧 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출발했지만, 나는 급했던 마음은 까맣게 잊고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장애를 가진 소녀를 돕겠다는 어설픈 동정심에 빠져 잠시 눈이 멀었던 게 아니었을까. 소녀를 위한다는 것이 결국 내 가슴에 일렁인 연민의식을 채우려는, 나를 위한 행동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호흡’으로 소녀를 ‘이롭게’ 하려 했던 그날의 경험은 이후 내 삶에 큰 파장을 남겼다. 그 동안 사회적 그늘 아래 놓인 이들을 위한다고 자부해왔던 내 사진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아프게 따져 물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사진 속 대부분의 삶들은 ‘소외 계층’으로 점철된 이들이었고, 나는 그들의‘외양’에만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빈민에게서는 ‘가난’을, 장애인에게서는 ‘장애’를, 외국인 노동자에게서는 ‘나와 다른 피부색’과 ‘잘려 나간 손가락’등만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의 삶에 시선을 두는 것은 나의 의지였으나 그 ‘처지’만 전면으로 내세운 이미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나의 큰 오만이었다. 이후 정작 중요한 ‘사람’ 그 자체를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쓰라린 반성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타인의 삶에 다가가게 됐다.
이런 생각으로 국내외를 넘나들던 어느 날 캄보디아 북동부 산악지역인 몬둘끼리 주의 가난한 소수민족 마을 ‘부스라’에서 낡고 허름한 옷차림에 동생을 업고 있던 한 소녀와 마주하게 됐다. 남루한 차림 대신 소녀의 얼굴에서 흐르는 잔잔한 미소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소녀의 이름은 ‘츠메이’. 온종일 밭일에 나가는 부모를 대신해 학교도 못 다니며 집안일을 거드는 것이 츠메이의 삶이었지만, 고단한 현실 속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소녀의 모습에서는 우아한 기품마저 느껴졌다. 작품으로서의 사진이 아닌, 타인의 삶과 사연을 전하는 ‘사연전달자’로 스스로를 규정한 명분과 이유를 츠메이와의 만남에서 찾게 된 것이다.
최근 국제개발협력시민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연구보고서 ‘한국 미디어의 아프리카 재현방식과 수용자 인식조사’에서 앞의 두 소녀와의 만남을 상기시키는 대목을 접하며 마음이 다시 묵직해짐을 느낀다. 한국 미디어들이 아프리카 및 아프리카인을 갈등, 가난, 기근, 질병, 그리고 문제 해결력을 상실한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고, 흑인은 열등하다는 인종우월주의적 관점, 정신적 행복보다는 물질적 풍요를 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제3세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왜곡하고 동정의식만을 심어주는 이미지가 난무하고 있음을 확인한 연구결과다. 더불어 대부분의 국제개발협력시민단체들이 이미지를 활용하는 모금사업에서 이런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미지 중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타인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제 완곡하게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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