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선행금지? 학교만 규제하면 뭐하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선행금지? 학교만 규제하면 뭐하나

입력
2014.09.14 18:33
0 0

학원에 광고·선전만 금지했을 뿐 사교육 강의 허용하고 규제는 없어

실효성 떨어지는 '허수아비법' 예상… "법 효율성 높이려면 학원 규제해야"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12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중·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전형에서 이전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는 내용을 출제하는 것이 금지된다. 하지만 공교육정상화법은 사교육 업체에서 선행교육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홍보 입간판. 연합뉴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12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중·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전형에서 이전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는 내용을 출제하는 것이 금지된다. 하지만 공교육정상화법은 사교육 업체에서 선행교육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홍보 입간판. 연합뉴스

서울 강남의 모 중학교 1학년인 A(13)군은 올해 3월 영재고ㆍ과학고 입시 전문 수학학원인 B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사전 테스트를 치렀다가 낙방했다. 평소 수학을 좋아하는 A군이었지만 너무 높은 수준의 문제에 당황, 10분 동안 끙끙대다 한 문제도 풀지 못한 채 포기하고 나왔다. 그 후 A군은 4개월 가까이 수학 과외수업을 받았다. 학교 수업과 학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과외가 아닌, 학원이 원하는 수준의 학원생이 되기 위한 과외였다. 결국 A군은 주 3회 수학 과외를 받은 끝에 7월 원하는 학원 테스트에 통과했다.

그렇게 학원에 들어간 A군이 받는 수업은 주 2회(회당 5시간)이다. 2시간의 강의가 끝나면 약 20~3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이어 3시간의 수학강의를 마친 뒤 오후 10시쯤 집으로 출발한다. 학원 테스트 준비 목적이었던 과외도 여전히 매 주말 1회씩 받고 있다. 학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중학교 1학년인 A군은 고교 수준의 수학을 배우고 있다. A군의 부모는 학원에 등록하기 전 ‘체벌할 수 있다’는 동의서에도 서명했다. A군의 어머니(43)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미 중학 수학 과정은 마쳤고,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수학을 배워야 뒤처지지 않는다”며 “정부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겠다고 하지만 지금 교육 시스템에선 없어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이 이달 12일부터 시행됐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이 떨어지는 ‘허수아비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법 적용이 학교에만 적용될 뿐 학원의 선행학습을 규제할 장치가 없어 사교육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교육 관계자들은 공교육정상화법의 시행으로 학교 현장에서의 선행학습이 줄어드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문제 출제가 불가능하고 고등학교 반 배치 고사의 수준도 중학교 과정에서 치러지게 돼 상급학교 진학과 학교 수업 진도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졌던 선행학습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사교육 업체에 대해서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내용의 광고나 선전을 금지했을 뿐 선행학습을 포함한 강의는 허용하고 있고, 홍보 금지도 위반했을 경우 제재 조항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의 한 학원 관계자는 “선행교육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인데 공교육 현장에서만 선행학습을 막는다고 효과가 있겠느냐”라며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수학학원, 영어학원에 들어가려고 별도의 과외까지 받는 현실인데, 이런 실정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법”이라고 말했다. 고교 1학년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 C(45)씨도 “학원에서 대부분의 교과 내용을 배우고, 정작 학교에서는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태반인데 법 시행만으로 선행학습을 없애겠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며 “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져 사교육 수요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공교육정상화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 업체에 대한 규제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교과 과정을 뛰어넘는 입시, 학교시험 등의 선행학습 유발요소는 다소 해결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법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사교육 업체에서 실시되는 선행학습을 직접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