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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살 만한 가치가 있나요? 삐딱이 소년의 질풍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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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살 만한 가치가 있나요? 삐딱이 소년의 질풍노도

입력
2014.09.1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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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퀵 지음ㆍ박산호 옮김

박하 발행ㆍ384쪽ㆍ1만4,000원

생일에 옛 친구 죽이고 자살 계획, 그 전에 좋은 사람들에 선물 나눠줘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작가 매튜 퀵, 상담교사 이력 살려 생생한 묘사

매튜 퀵의 재기발랄한 성장소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은 현재의 고통을 미래의 낙관적 시점에서 사후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삶은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 Alicia Bessette
매튜 퀵의 재기발랄한 성장소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은 현재의 고통을 미래의 낙관적 시점에서 사후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삶은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 Alicia Bessette

중산층이라는 제도적 허위를 견디지 못하는 괴짜 소년의 일탈은 ‘호밀밭의 파수꾼’ 이래 미국 성장소설의 면면한 전통이 됐다. 학교점수는 낙제지만 동서고금의 고전들은 훤히 꿰고 있는 이 지적인 소년들은 제2의, 제3의 홀든 콜필드를 자처하며 연대별로 다채롭게 자기 시대의 ‘호밀밭’을 썼다. 질풍노도의 에너지를 어른들의 기만적 삶을 들춰내고 가격하는 데 아낌없이 소모하는 이 삐딱이들은 사춘기의 자명하고도 필연적인 아이돌로서, 여느 품행 방정한 소년소녀들의 성장까지도 대행해왔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이후 전 작품이 영화화하며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가 된 매튜 퀵의 2013년 장편소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도 이 전통의 흐름에 선 소설이다. 슬픔과 유머를 능란하게 변주하는 스토리텔러로서의 기량과 캐릭터의 매력을 빚어내는 가공할 능력이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손에 잡으면 단숨에 읽어버리게 되는 드문 책이다. 주책없이 낄낄대다 한없이 애잔해지는 이 사랑스런 성장소설은 고교 상담교사로 오래 일한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청소년들의 심리와 캐릭터 등 세부의 묘사가 특히 생생하고 밀도 높다.

소설의 주인공은 18세 생일을 맞게 되는 왕따 소년 레너드 피콕. 한때 록스타였던 아버지는 약물 중독에 빚만 잔뜩 진 채 수사 당국을 피해 베네수엘라 정글로 잠적해버렸고, “젊어질 수만 있다면 갓난 아기도 욕조에 담글 수 있는” 여자인 엄마는 아름답고 우아한 외모 때문인지 아들을 버리고 홀로 떠난 뉴욕의 패션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단짝이었던 동네 친구 애셔 빌과의 ‘그 일’ 이후 엄마는 떠나버렸다. 피해자인 레너드의 엄마도, 가해자인 애셔의 엄마도 명백한 아들들의 변화를 못 본 체 외면하고, 번번이 구조 신호를 무시당한 레너드는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여긴다.

엄마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생일을 맞아 레너드는 마침내 한때는 단짝친구였으나 이제는 학교의 폭군이 된 애셔 빌을 죽이고 자살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다만 지구를 떠나기 전, 자신이 벌인 참극으로 생의 의미를 침식당하게 될 몇몇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 임무가 남아있다.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어서 미안’하기 때문이다. 험프리 보가트의 대사를 통째로 외우게 한 옆집 골초 할아버지 월트에게는 보가트 스타일의 중절모를, 애셔 일당에게 무참하게 얻어맞던 걸 구해준 인연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바이올린 연습 장면을 2년간 지켜보게 해준 이란계 소년에게는 이란의 민주화 운동 단체에 보낼 기부금을, 기독교를 믿어야만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답답하지만 아름다운 ‘전도 소녀’ 로렌에게는 은제 십자가 목걸이를 선물한다. 소설의 핵심 인물이자 레너드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어른인 홀로코스트 수업 교사 실버맨에게는 미군 장교였던 할아버지의 훈장을 건네고 마침내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그 옛날 할아버지가 나치에게서 뺏은 P-38 권총을 들고 애셔의 집 앞에 숨어 그를 기다린다.

소설은 ‘과연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지’와 ‘설마 저지르는 것인지’ 사이의 긴장과 그 긴장의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폭소를 유발하는 위트 넘치는 서술 및 전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기저부에 깔린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레너드의 유효한 문제제기가 아련하게 슬픔을 불러일으키며 복잡한 심경을 초래한다. 레너드는 학교를 땡땡이 치는 날이면 기차에 올라 “나이 먹는 것과 어른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가장 슬프고 우울해 보이는 어른을 따라다닌다. 반복되는 조사의 과정에서 레너드의 눈에 비친 ‘어른적 삶’은 우리에게 그의 자살을 막을 어떤 구실도 떠올리지 못하게 한다.

19년간 교사 생활을 하며 본 가장 에세이를 잘 쓰는 소년이지만 대입자격시험 SAT를 치르는 건 똥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레너드에게 실버맨 선생님은 미래에서 온 편지를 쓰라고 강권한다. 미래의 아내, 딸이 보내는 행복한 생으로의 초대다. “이건 아주 근사한 인생이야, 레너드. 그러니까 버텨봐”라고 편지에는 씌어있다.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울부짖는 레너드에게 실버맨 선생님이 건네는 최후의 위로는 단호한 예스. “그럴 수 있어. 세상이 널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만 않는다면.” 쉽지는 않다. 실버맨의 말마따나, 아이건 어른이건, “그건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전쟁”이니까.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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