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이후 주한미군 통해 소개, 우리의 '빨리 빨리' 특성과 맞아
원두커피 가루 5%가량 섞은 프리미엄 인스턴트 인기
전문점 커피보다 카페인 적지만 쉽게 자주 마셔 과잉섭취 위험
주한 러시아공사 카를 베베르가 고종 황제에게 커피를 권한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후 러시아 공관에 약 1년간 머문 고종은 원두커피를 마시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1896년 아관파천 때 일이다. 고종은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고종이 커피를 마신 지 118년이 지난 지금, ‘커피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우리는 커피를 즐겨 마신다. 커피 소비의 일등공신은 원두커피가 아닌 커피믹스로 통하는 인스턴트커피다. 우리나라는 원두커피가 아닌 인스턴트커피 매출이 73%(1조3,000억원)나 되는 특이한 시장이다. 국내 원두커피 매출은 10.8%에 불과하다.
대세로 떠오른 인스턴트원두커피
최근 인스턴트커피에다 원두를 5%가량 섞은 인스턴트원두커피가 새로 뜨고 있다.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의 83.9%를 차지하는 동서식품이 2011년 선보인 인스턴트원두커피 ‘카누’가 지난해까지 누적판매량 6억 잔을 기록했다. 인스턴트원두커피 시장규모가 올해 1,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인스턴트원두커피가 급성장한 이유는 뭘까.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 7월 주 1회 이상 인스턴트원두커피를 마시는 8대 광역시 20~50대 남녀 500명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커피전문점을 이용하기 보다 간편해서’라고 했다. 20대 응답자의 경우 ‘커피전문점보다 값이 싸서’라는 응답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1일 1회 이상 인스턴트원두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비중은 65.6%에 달했다. 1일 2회 이상 마신다는 응답자 비율도 41.4%였는데 특히 50대 이상은 48.8%를 기록해 커피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스턴트원두커피를 마시는 시간대도 다양했다. 주중에는 출근 후 오전(21.7%)에 가장 많이 커피를 마셨고 식사 후(20.1%)에도 커피를 찾았다. 직장인들은 업무(17.8%)시에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 주말에는 집에 혼자 있을 때(23.4%) 커피를 마셨다. 야외 활동을 할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응답자의 18.8%는 야외활동 중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주중 오전에 가장 많이 인스턴트원두커피를 즐기는 연령대는 20대로 응답자의 23.3%가 해당됐다. 인스턴트원두커피를 즐기는 소비자들은 가격뿐만 아니라 맛을 중요시한다. 응답자의 42.0%가 인스턴트원두커피 구입 시 맛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과 40대에서 맛을 고려하는 비중이 높았다.
“식품공전의 ‘식품 유형’에 없는 용어”
인스턴트원두커피 맛은 제품의 95%를 차지하는 인스턴트커피가 좌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이 커피에 환호하는 것은 5%밖에 함유되지 않은 미세한 원두 가루가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원두커피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인스턴트원두커피는 기존 인스턴트커피에 볶아 분쇄한 미세한 원두커피 가루가 첨가된 것이다. 인스턴트원두커피를 마시면 찻잔 바닥에 원두가 남는데 물에 녹지 않은 원두커피 가루가 가라앉은 것이다.
제조공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인스턴트원두커피라는 용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다. 홍기영 인디커피 대표는 “95% 인스턴트커피에 5% 원두커피 가루가 들어간 커피를 원두커피라고 홍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대중은 질 높은 원두커피를 마시는 것을 착각하고 있지만 설탕, 프림을 첨가하지 않고 향을 보강한 인스턴트커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 커피제조업자는 “인스턴트원두커피는 사실 식품공전의 ‘식품의 유형’에 없는 용어”라며 “커피업체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져 시장에서 불리고 있는 용어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동서식품 관계자는 “인스턴트커피의 편리함과 원두커피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것이 바로 인스턴트원두커피”라며 “최고급 원두와 기술력을 통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커피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페인 중독’에 쉽게 빠져들기도
인스턴트원두커피 정체성도 문제지만 편리하게 마실 수 있어 빠져드는 카페인 중독도 간과할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하루 카페인 권장섭취량은 400㎎ 이하로 인스턴트원두커피에는 40~70㎎ 정도 카페인이 함유돼 있다. 커피전문점 커피(아메리카노 기준) 1회분 평균 카페인 함량인 123㎎보다 낮지만 간편히 마실 수 있어 카페인 과잉섭취 위험도를 무시할 수 없다.
15년 차 회사원 김정미(38)씨는 “2년 전부터 건강을 생각해 커피믹스를 마시지 않고 인스턴트원두커피를 하루에 여러 잔 마시는데 카페인 함유량이 클 줄 몰랐다”며 “물처럼 마실 수 있어 즐겨 먹고 있는데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하루에 2, 3잔 정도 커피를 마시면 당뇨병, 췌장암, 천식, 두통, 간경화 등에 도움이 되지만 과하게 섭취하면 문제 될 수 있다”며 “커피 1잔만 마셔도 가슴이 뛰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유전적으로 카페인이 맞지 않으므로 커피를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박스기사] coffee Q&A, “커피, 이것이 궁금하다”
Q : 우리나라는 왜 원두커피보다 인스턴트커피가 많이 팔리나?
A : 커피문화 차이라 할 수 있죠. 1950년대 6ㆍ25전쟁 후 주한미군을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소개된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1970년대 동서식품이 미국 제너럴푸드사와 합작해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면서 대중화 됐습니다. 물만 부으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장점이 ‘빨리 빨리’를 원하는 한국인의 특성과 맞아 떨어진 셈이죠.
Q : 한국인이 선호하는 커피 맛은?
A : 동서식품 등 커피업체와 커피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구수하고 쌉쌀한 커피 맛을 선호합니다. 이러한 맛을 가장 잘 낼 수 있는 원두가 ‘로부스타종’입니다. 로부스타 원두를 실제로 씹으면 옥수수, 보리처럼 구수한 맛이 납니다. 아라비카종보다 쓴 맛이 강해 원두커피로 사용하기 어려운데 설탕, 프림 등을 첨가한 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데 제격입니다. 단가가 저렴한 것도 한몫을 했죠. 실제로 2012년 관세청 커피수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생두 1위는 로부스타종인 베트남 생두로 1㎏당 2.24달러였습니다. 로부스타 원두는 캔 커피, 가격이 저렴한 커피믹스 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Q : 원두에도 유통기간이 있나요?
A : 커피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두의 유통기간은 1~3년까지입니다. 대형 커피제조업체는 2년 정도, 중소업체는 1년 정도 수입한 원두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에스프레소 기계를 통해 추출한 원두커피는 유통기간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핸드드립, 커피메이커를 사용해 마시는 원두커피는 15~30일 음용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Q : 원두의 신선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A : 생두를 볶아 만든 것이 원두죠. 갓 볶은 원두는 열을 받아 이산화탄소가 꽉 차 있습니다. 갓 볶은 원두인지 확인하려면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압니다.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빵처럼 부풀어 오르면 갓 볶은 원두입니다. 핸드드립이나 커피메이커를 이용해 원두커피를 마시려면 이런 원두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커피전문점 등에서는 갓 볶은 커피를 에스프레소 기계에 넣고 추출하면 원두가 열에 반발을 일으켜 커피원액을 추출할 수 없습니다. 이에 원두에서 이산화탄소가 빠진 3, 4일 후 원두를 추출해 커피를 만듭니다.
Q: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의 차이점은?
A: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는 사실 커피메뉴가 아니라 커피 추출방식입니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높은 압력으로 짧은 순간에 커피를 추출하는 기계를 말하는 것으로 영어식 표기인 익스프레스(express)를 의미하죠. 아메리카노(Americano)는 커피에 적당량의 뜨거운 물을 섞는 브로잉 방식을 선호하는 미국에서 시작된 커피 추출방식으로 에스프레소 기계를 통해 추출된 커피 원액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 우유를 넣으면 카페라떼를 만들 수 있죠. 재료에 따라 다양한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김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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