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가 지나고 개강이 본격화한 오늘 대학 캠퍼스가 활기로 가득하다. 강의실로 들어서는 교수의 발걸음에도 설렘과 기대가 교차한다. 그 동안 이런저런 인연으로 안면 있는 학생들에게 방학 중 안부를 물었다. 취업준비에는 예외가 없었고, 인턴십과 교환학생, 각종 봉사활동은 필요에 따른 옵션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교내외에서 아르바이트에 매진한 이도 다수였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30년 뒤의 세상을 살맛 나게 만들기 위해 역사를 고민하며 대작을 섭렵하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기치로 문화와 역사를 탐방하게 하는 일은 사치에 가깝다. 당장 토익 점수가 필요하고, 인턴십 경력이 긴요하며, ‘인적성’ 시험준비가 시급하다. 면접에 어찌 임해야 기업가들의 눈에 들지가 나라경제를 고민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살벌한 전장으로 내몰았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대학을 갓 졸업한 노동시장 신규진입자 중 40.4%가 구직에 실패했다. 2014년 신규대졸자가 약 48만5,000명이니 무려 20만명 가량이 실업자로 경제활동을 시작한 셈이다. 공식적인 우리의 청년실업률은 약 9.5%이지만, 준실업상태에 다름 아닌 아르바이트나 단시간노동에 삶을 의존하는 ‘프리터’족이 93만여명, 실업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구직포기 상태의 ‘니트’족이 72만여명이다. 어림잡아 백수십만의 청년노동력이 시장에 버려지듯 방치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호주의 청년고용률은 54.6%, 독일과 영국은 47% 수준이다. 우리와 경제사정이 비슷한 일본은 38.5%로 OECD 평균인 39.2%에 근접해 있다. 반면 우리의 청년고용률은 24.2%다. 우리보다 청년고용률이 낮은 국가는 그리스(13.1%), 이탈리아(18.6%), 스페인(18.1%) 등 재정 위기에 있는 국가들이다.
청년층 고용사정이 이런데 그들의 일자리 질이 좋을 리 없다. 노동력의 과잉공급은 수요자에게 비용경쟁을 유인하고 그 결과 일자리는 점점 궁핍화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9세 이하 노동자의 절반 이상(54.5%)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20~24세 청년층의 21.8%도 최저임금 미만 소득자였다. 이런 최저임금 사각지대는 종업원수 10인 미만의 소기업에 집중돼 있다.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단시간 노동에 종사하는 청년층이 열악한 근로조건에 노출돼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들 대부분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있고, 추가 수당 없는 초과노동과 임금체불 등에도 하소연 한번 제대로 못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경제가 고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학습의 절대량으로 치자면 단연 세계 최고인 우리의 청년노동력이다.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출발이다. 우선 인적자원 수요가 높고 채용여력이 있는 전통적 제조업 부분과 경쟁력 있는 서비스 산업에서의 적극적인 일자리 확대 노력이 필요하다. 일자리가 확대되고 가처분 소득이 증대해야 시장도 커지고 생산과 서비스 공급도 촉진될 수 있다. 다음으로 청년고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기업 내 인적자원 관리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임금체계를 합리화해 신규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연공에 기반한 호봉제 시스템은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강해 기업의 일자리 여력을 감소시키는 측면이 있다. 셋째, 젊은이들의 중소기업 취업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노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노동시장의 임금ㆍ복지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 부문의 양보와 중소기업 부문의 개선이 동시에 수반돼야 한다. 넷째, 공공기관 등 정부 부문에서의 적극적 고용확대 조치가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에 결정된 헌법재판소의 공공기관 청년고용할당제 합헌 판정은 의미가 크다. 마지막으로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아르바이트 및 단시간 노동 부문을 법의 테두리로 포괄해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근로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최저임금 미지급과 임금체불 등을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중앙 정부의 행정력으로 역부족인 경우 지방 정부와의 적극적 공조 모색도 필요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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