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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대망(大忘)과 소망(小忘)

입력
2014.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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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건망증으로 고민하는 중년의 벗들이 많다. 그래도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고금에 드물지 않았으니 그것으로도 위안이 된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사택망처(徙宅忘妻)라는 말이 있다. 이사를 가면서 아내를 데리고 가는 것을 잊는다는 말이니, 그 건망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건망증을 낫게 하는 많은 처방이 생겨났다.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건망증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거니와, 역으로 중국의 의학서에는 까마귀의 고기나 알, 털을 먹으면 건망증을 낫게 할 수 있다고도 되어 있다.

그러나 건망증을 낫게 하는 것이 과연 좋을 일인가? 중국 고대에 양리화자(陽里華子)라는 사람이 건망증이 심하여, 온 가족이 걱정하여 만방으로 고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이때 어떤 유생(儒生)이 찾아와 신기한 비방으로 치료해주었는데 잠에서 깨어난 양리화자는 크게 성을 내면서 아내를 내쫓고 자식에게 벌을 주었으며, 창을 들고 가서 그 유생을 내쫓았다. “내가 예전 건망증이 있을 때에는 하늘과 땅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는데 이제 갑자기 깨어보니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존망(存亡)과 득실(得失), 애락(哀樂)과 호오(好惡) 등 천만 가지 기억들이 복잡하게 떠오른다. 앞으로도 내 마음을 이토록 산란하게 할 것이 염려된다”라는 이유에서였다.

잊어버리고 모른 채 사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송(宋)의 학자 사양좌(謝良佐)는 “습망이양생(習忘以養生)”, 곧 망각의 기술을 익혀 양생의 방도로 삼는다고 하였다. 조선의 학자 중에도 습망재(習忘齋)니 망와(忘窩)니 하여 망각을 집의 이름으로 삼은 이가 제법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름을 붙인 뜻은 정말 중요한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사소한 것을 잊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봉조(金奉祖)는 망와에 붙인 글에서 “내가 말한 잊는다는 것은 잊을 만한데도 잊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요,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을 모두 잊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은인과 원수는 잊어야 하는데도 내가 풀어버릴 수 없고, 영광과 치욕은 잊어야 하는데도 벗어날 수가 없다. 만물 중에 기뻐하고 노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불쌍히 여기고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즐거워하고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것들이 또한 마음속에 어지럽게 딱 붙어 있으니, 내가 어찌 잊는 것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이익(李瀷)은 습망재에 붙인 글에서 사람의 마음은 정해진 양이 있다고 전제한 다음, “사람은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이 없을 수 없어서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면 남겨두게 되고 남겨 두면 쌓이게 되며 쌓이면 가득 차게 되고 가득 차게 되면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 치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음에 얼마나 담아 둘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잊음에는 대망(大忘)과 소망(小忘)이 있다. 공자는, 이사하면서 아내를 잊은 것은 사소한 건망증이요, 은(殷)의 마지막 임금 주(紂)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잊은 일은 큰 건망증이라 하였다. 유한준(兪漢雋)은 잊어버리는 일에 대하여(忘解)라는 글에서 “천하의 근심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잊을 만한 것을 잊지 못하고 잊을 수 없는 것을 잊는 데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불의한 부귀영화는 잊어야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은 잊어서는 아니 되며, 주고받음에 정의를 잊어버리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예의를 잊어버리면 아니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대망’은 경계할 줄 알지만 ‘소망’은 실천하기 어렵다. 권력과 부귀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17세기의 학자 오준(吳竣)은 올린 사직의 글에서 “건망증이 나날이 고질병이 되어가니, 평소 집안에서 부리는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매번 바꾸어 부르기도 하고, 아침에 한 일을 낮이 되면 기억하지 못하며, 어떤 물건이 여기 있는데 남들이 슬쩍 가져가도 잊은 줄을 모릅니다. 정신이 이러하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건망증을 핑계거리로 삼아 ‘소망’을 실천하는 풍경이 그립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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